▲ 친구들과 자전거 하이킹을 가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사진 가운데).
정경호 선생 제공
분신 이후에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친구들이 정신을 가다듬고 전해준 이야기는 그의 인간적 면모와 신념 등이 녹아 있어 더욱 숙연해진다.
보성 동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그 학교의 전통으로 흑염소를 장학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 흑염소를 잘 키워서 새끼를 낳으면 학교에 한 마리 들여놓아 후배들이 장학금으로 또 흑염소를 받는 식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한 친구가 자전거 하이킹을 제안해서 가게 되었다. 철수가 "우리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라고 제안했고, 비포장길인 보성에서 회천 가는 고갯길 마루인 봇재에 들러 라면을 끓여 먹었고, 철수는 "아~ 좋다!" 하면서 뒤로 고개를 젖히고 사진을 찍었다.
체구가 작은 짝궁을 친구들이 놀리고 무시하자, 철수는 "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지 놀리면 되냐?"라고 말했고, 어눌하여 친구들에게 무시당한 친구를 보호하고 공부도 도와주었던 의리가 넘치는 친구였다.
그때 철수에게 보호를 받았던 친구가 분신 이후 병상에 찾아와 '얼른 일어나 백 원짜리 라면 끓여 먹자'는 편지를 남겨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1학년 때 동아리에 들어오기 위해 선배들이 면접을 보는데 '가난이 우리 부모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농촌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하여 같이 면접을 보러 대기하던 친구가 너무나도 인상이 깊어서 자신의 일기장에 써놓기도 했다고 한다.
교내 봉사동아리 지도교사로 만난 김철수

▲ 김철수 열사의 장례식 날이기도 한 1991년 6월 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추모제 관련 자료.
정경호 선생 제공
그와 나의 인연은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교내 봉사동아리인 '인터랙트' 회원으로 들어왔고 나는 지도교사였다.
여름에 보성군 율어면 자모리에 있는 보성강변으로 캠핑을 갔다. 캠핑을 가면 꼭 하곤 했던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서 나무를 구하는데 그 나무가 강 건너편에 있었다. 물살도 세지 않고 물길도 깊지 않아서 건너편에 쌓인 나무들을 옮겨오기로 했는데 철수가 웃통을 벗고 제일 앞장서서 나아갔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철수가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는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가까운 친구들이 증언해주었다. 또 철수의 공부 방법은 특이했다. 사회과목 중 평등의 원칙, 국민의 4대 의무 등을 배울 때 책의 뒤쪽에 나와 있는 헌법 조문을 외우는 방식이었다. 친구가 "왜 그렇게 공부하냐?"고 묻자, "그래야 기억이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했다.
이러한 학구열이 표현된 일화로 고등학교 2~3학년 때 새벽 2~3시 빈 교실에 가서 공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공부가 잘된다고 하면서.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수위아저씨에게 열쇠를 달라고 하니까 귀찮아져서 열쇠보관함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산비탈 위에서 사는 친구 집에 연탄을 나르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끝나고 나서 친구 어머니에게 "라면 하나 끓여주세요" 살갑게 말해서 어른들이 더 좋아했다.
공책에 쓴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될 것인가?'

▲ 김철수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친구.
김태성 전대신문사 기자
고등학교 2학년 때는 5·18행사를 학생회가 학교 측과 협의해서 하는데, 1시간만 하게 하였다고 해서 학생주임에게 '너무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행사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간 후에 도저히 참지 못하여 몇몇 학생들을 규합하여 어깨를 걸고 시위를 하러 나오다가 학생주임에게 제지당한 일도 있었다.
같은 해 노동현장을 보고 오겠다는 결심으로 부산에 있는 고무신 공장에 가서 며칠 일하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아서 무단결석을 했다고 하여 담임교사에게 체벌을 당하기도 하였다.
김철수 열사를 생각하는 친구들에 따르면 철수는 마음이 여리지만, 아니다 싶은 것은 돌려서 말하지 않는 진솔하고도 강직한 성격이었다. 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붙임성이 좋아서 어른들에게도 살가웠고, 자기감정에 충실하고도 정직하였다.
무엇보다도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공책에다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쓴 후에 마지막 부분에 혈서를 쓰기도 했는데, 분신 후에 자취방에 가보니 그 공책이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고 친한 친구는 안타까워하였다.
한 세대 전 처참한 교육현실에 정면으로 대항
▲ 보성고 교정에 세워진 김철수 열사의 동상. 동상은 친구들과 후원자들의 성금, 또 전교조, 보성교육지원청, 보성고등학교 교장과 학생들의 지원과 참여로 2017년 10월 28일에 보성고 교정에 세워졌다.
정경호 선생 제공
▲ 김철수 열사의 약력과 삶의 여정을 기록해놓은 동판.
정경호 선생 제공
이런 김철수 열사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것은 정의로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정의를 말하는 이유는 정의가 있어야 공동체가 유대하고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대들에게 정의는 공정을 의미하는 것이고, 각자도생을 할 테니 기회의 공정을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즉, 내 몫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게 적어도 기회는 공정해야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런 생각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문제이다. 가장 순수할 뿐만 아니라 학습 능력이 우수하고, 일생을 좌우할 가치관을 길러야 할 시기에 무한 경쟁만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가장 큰 문제이다.
물론 그 학교교육의 폐단을 조장하는 것은 학연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되는 우리 사회의 병폐와 그것을 떠받들고 있는 입시정책이다. 그래서 학생의 개성과 소질을 존중하는 교육이 아닌, 무한한 학력 경쟁에 학생을 종속시키고 대상화하는 교육이다. 김철수 학생은 한 세대 전에 이런 처참한 교육현실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열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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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 고교생의 외침 "왜 로보트 교육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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