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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도 없는 동네 빵집이 살아남은 비결, 이겁니다

[맛있는 잡담④] 희소성 높은 아이템에, '천천히 조금씩' 도전... 초보 빵집 사장의 전략

등록 2021.05.26 16:17수정 2021.07.1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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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장사를 하려는 건데, 안돼! 안돼!"
"자신있단 말야. 하고 싶어…"



한동안 아내와 나는 장사 문제를 놓고 꽤나 투닥거렸다. 생활력이 강한 아내는 양팔을 걷어붙이고 장사(정확히 말하면 먹거리 사업)를 하고 싶어 했는데 나는 계속해서 반대 의견을 냈다. 일단 아내가 고생하는 것이 너무 싫었고, 더불어 먹거리 장사 특유의 불확실성이 불안하기만 했다.

"내가 그냥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주말에는 알바도 하고 그럴게. 집에서 쉬면 안돼?"
"힘이 있을 때 함께 벌어야지. 요식업은 잘만하면 어지간한 직장인보다 낫단 말야."


아내는 닭볶음탕 전문점, 분식점 등 여러 가지 아이템을 내놓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먹거리는 안됨!'이라는 생각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적극적인 자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내의 음식에 대한 재능은 믿었다. 결혼 전 요리를 거의 해보지 않았음에도 인터넷 레시피 등을 통해 금방금방 완성된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히 재능 자체는 뛰어나다.

하지만 장사는 음식 솜씨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사업이다. 단순히 맛있게 내놓아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단가 계산부터 사업 수완까지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아내는 이전까지 직장만 다녔지 장사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먹거리 장사는 많은 이들이 뛰어드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돈을 잘 벌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아마도 그렇게 아내의 먹거리 장사를 반대했던 데에는 나의 직업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현재 나는 인쇄 광고업에 종사하고 있다. 명함, 스티커, 전단부터 각종 책자 등을 디자인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다양한 직업군을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체험 중이다.

특히 먹거리 사업에 종사하는 거래처가 많은지라 현장에서 정말 많은 한숨 소리와 땀방울을 보고 듣고 있다. 대박 수준으로 잘되서 부러운 마음이 들게끔 하는 업소도 있지만 열에 여덟, 일곱은 정말 힘들어하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또 그중에서 반절 정도의 사장님들은 이른바 '죽지 못해 하고 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그늘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이런 저런 모습을 쉼없이 보고 있었는지라 혹시 업종을 바꾸더라도 먹거리 장사는 계획에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열정이 넘쳤고 결국 우리 부부는 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최종 선택지는 브랜드가 없는 빵집이었다.
 

감자빵, 고구마빵 ⓒ 김종수

  
편한만큼 데미지도 크다, 체인의 명과 암

어떤 먹거리가 좋을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일단 체인점은 한쪽으로 제치고 생각했다. 아, 물론 잘 알고 있다. 현 상황에서 체인점은 트랜드를 넘어서 먹거리 산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강자다. 빵, 치킨, 족발·보쌈, 피자 등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의 대부분은 대형 체인이 접수한 지 오래다. 싫든 좋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장사는 아무나 하냐'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먹거리 장사를 계획하는 시점에서 확실한 기술이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가장 먼저 끌리는 건 단연 브랜드 체인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음식을 팔기 위해서는 직접적이고 확실한 기술이 필요했다. 때문에 장사를 하기 이전, 우선적으로 일을 배우기 위해 기존 업소에 종업원으로 들어가거나 무리를 해서라도 해당 기술자를 모셔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체인의 장점은 이런 부분을 생략하고 빠르고 편하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점에서는 예비 창업주들에게 간단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완성품에 가까운 재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일정한 재료를 정해진 레시피대로 활용하는지라 맛의 편차도 적다. 기술에 대해 부담이 많은 이들 입장에서는 굉장한 메리트다.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일부 업종을 제외한 빵, 치킨, 피자, 족발 등 이른바 간단한 먹거리에 한해서는 '체인점 시스템'이 대중화되면서 곧바로 창업이 가능해졌다. 최근 중화요리나 각종 한정식 등 상대적으로 손이 더 필요한 분야까지도 체인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현재대로라면 머지않아 대부분의 먹거리 체인화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체인 시스템은 창업주들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쉽고 빠르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금전적인 부담이 더 크다.

또,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간섭의 도가 지나친 경우도 잦은지라 사업 중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오픈 때부터 만만치 않은 금액으로 인테리어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고 장사를 시작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재료나 물건을 은근히 강매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어느 정도 장사에 익숙해진 업주들 같은 경우 원가 절감 등을 이유로 직접 재료를 구입해서 가격을 조절하려는 생각도 하지만 상당수는 본사에서 더 비싼 가격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까지 구입하기 일쑤다. 각 지역별로 정해진 여건이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본사의 영업 방식을 어쩔 수 없이 계속 따르는 경우도 잦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 위주로 느끼는 것이고 체인점마다 조금씩 시스템이나 지점에 대한 대우가 다를 것이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 실물에 가깝게 모양을 내는것도 재미있는 과정이다. ⓒ 김종수

   

복숭아빵 ⓒ 김종수

 
동네 빵집으로 살아남기

어찌보면 광고 계통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간접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은 장사를 막 시작하는 입장에서 다행이었다. 우리 부부는 '천천히 조금씩 가자'는 방향으로 생각을 모으고 경험도 쌓아나가면서 위험 부담도 적은 쪽을 생각해봤다.

일단 초기 자본은 무리해서 투자하지 않고, 더불어 동종 업종이 많은 쪽도 배제했다. 초보가 불쑥 끼어들어 비체인점으로 경쟁하기에는 기존 업체들의 노하우와 고객층을 이기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빵집 카드를 들고나왔을 때 사실은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잘나갔던 동네 빵집들도 대형 체인에 밀려 대부분 문을 닫아버렸는데 이제와서 비브랜드 빵집으로 승부를 건다는 것은 무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내가 직접 배워서 구워온 첫 빵을 먹어본 순간 생각이 확 바뀌었다.

아내가 하려는 빵집은 기존 빵집과는 조금 달랐다. 밀가루가 아닌 쌀을 주재료로 쓰고, 고구마, 옥수수, 감자, 밤, 복숭아 등을 맛은 물론 모양까지도 비슷하게 오븐에 구워내는 것이었다.

쌀을 주원료로 했다는 점에서 떡을 연상시키지만 만드는 방식은 빵인지라, 떡도 되고 빵도 되는 희소성 높은 아이템이었다. 전국적으로 이런 곳은 상당수 있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는 없었고 '차별화는 확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가을에 오픈해 지금까지 8개월 정도 영업하면서 대박은 아니지만 적어도 꾸준함은 유지하고 있다. 특이함을 신기해하며 찾아오는 손님도 있고, 밀가루 알레르기나 아토피 때문에 기존 빵을 못 드시는 분들의 발길도 잦다. 무엇보다 보람 있던 것은 어르신 손님들이다.

"자식들이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용돈을 줬는데 먹을 것이 없어. 내가 닭튀김을 먹겄어? 피자나 빵을 먹겄어? 떡이나 가끔 먹었는데, 여기 것은 맛이 묘해서 자꾸 땡기네."

오픈 당시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어르신 손님들의 좋은 반응에 흐뭇하면서도 '아… 우리네 아버님, 어머님 또래께서 드실만한 것이 많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슬퍼지기도 했다. 빵을 굽는 아내에게도 정말 보람찬 일을 하고 있다고 토닥여줬다.

동네 빵집은 체인과 달라 홍보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때문에 전단지 등을 주기적으로 뿌렸고 더불어 SNS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요새는 시대가 바뀌어서 백발이 성성한 동네 국밥집 노사장님도 SNS를 하신다. 소통의 공간이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다.

우리 부부 역시 SNS 등을 통해 빵집도 홍보하고 다양한 분들과 소통하며 인맥을 넓혀나갔다. 그 결과 SNS를 보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상당수다. 가게 매상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택배 발송을 제외하고 매장 장사만 놓고 봤을 때 SNS의 비중은 50%는 족히 될 것 같다.

비체인점을 운영하려면 하나하나 다 스스로 해야 하는지라 일거리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꾸준히 노하우가 쌓이게 되면 내가 모든 일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도 크다.

더욱이 각 지역, 동네별로 내 지역 상권 살리기 바람이 불고 있는지라 맛과 청결함 등만 보장된다면 관공서, 공공기관의 도움도 적지 않게 받을 수 있다. 이왕 먹을 것, 내 지역 먹거리를 많이 이용해주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우리도 아직은 초보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다 저렇다 확답하듯 얘기하는 것은 다소 건방질 수도 있다. 다만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하나 배워나가며 동네 빵집(동네 먹거리)도 비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꼭 보여주고 싶다.
#비브랜드 동네빵집 #고구마빵 팥빵 #옥수수빵 밤빵 #복숭아빵 감자빵 #초보 빵집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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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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