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태 콩국수거뭇한 국물이 뽀얀 국수와 어우러지는 색감의 조화도 식욕을 자극한다.
픽사베이
나이 들어가며 국수 종류를 많이 찾는다. 여름이 되면 특히 냉면과 콩국수를 즐겨 먹는다. 냉면은 육수의 비법이 맛집마다 남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흉내 내서 집에서 맛을 내기는 어렵다. 콩 국물처럼 맛있는 국물을 쉽게 공수할 수도 없다. 반면 콩국수는 시장에서 비리지 않고 고소하고 진한 콩 국물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잘만 선택하면 집에서도 쉽게 그럴듯한 한 상을 차릴 수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콩을 사서 불리고 삶고 믹서로 갈아서, 베 보자기에 걸러 힘들고 어렵게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가족들의 떨어진 입맛을 잡아 보겠다고 나름 먹거리에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이었다. 비지는 냉동실로 직행했다가 비지찌개로 만들어졌고 어렵게 만든 콩 국물은 종일을 수고한 무용담과 함께 긴 여름철에 한두 번씩만 별식으로 먹었던 것 같다.
힘들고 복잡해서 자주는 못 했지만, 그렇게 한번 해 먹으면 여름을 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스스로에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은 더위의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힘도 났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작업의 기억 때문에 내게 콩국수는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귀한 음식으로 각인돼 있다. 그야말로 비지땀을 흘리며 삶고 갈고 분리하고 했으니. 물론 지금은 그렇게 애쓰지는 못한다.
우리 집 콩국수 비법은 시장표 콩 국물이다. 시장의 수십 곳 중에서 우리 입맛에 최적화된 단골집에서 여름이면 뻔질나게 콩 국물을 사 온다. 갈증이 나면 두유처럼 마시기도 하고 국수를 삶아 콩국수로 먹기도 한다. 과정의 90퍼센트는 콩 국물이 다 하는 것이라 10퍼센트의 수고로 특별한 식탁이 준비된다.
요즘엔 웰빙 바람을 타고 검은콩으로 만든 콩 국물이 시장에도 많이 선보인다. 가격도 흰콩 국물보다 더 비싸다. 집에서 만들 때는 시골에서 보내주신 콩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만들었는데, 시장에서 살 때는 늘 서리태콩으로 만든 콩 국물을 사 온다. 검은콩 국물이 모 연예인의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의 비결이었다는 소리에도 혹했고, 미운 흰머리가 쑥쑥 올라올 때마다 나에게도 비슷한 효과를 내주길 내심 기대하면서.
블랙푸드의 대표주자인 검은콩에는 양질의 단백질뿐 아니라 지질, 비타민 B1, 비타민 B2, 비타민 E 등의 영양소가 들어있다고 한다. 검정콩은 일반 콩보다 노화방지 성분을 4배가량 많이 함유하고 있고, 성인병 예방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거뭇한 국물이 뽀얀 국수와 어우러지는 색감의 조화도 식욕을 자극한다.
콩국수 면으로는 중면이 딱이다. 소면보다 조금 더 오래 삶고 찬물에 바로 넣어 조물조물 전분기를 빼면, 부드럽고 매끈한 식감에 탄력을 입은 면이 완성된다. 물기를 빼고 국수 그릇에 소복이 덜고, 면 주위로 콩 국물을 돌려 붓는다. 하얀 면 위에 오이와 통깨를 듬뿍 넣어주고 반숙 달걀을 예쁘게 썰어 얼음 몇 조각까지 동동 띄우면, 맛집에서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은 비주얼의 '고오급' 콩국수가 완성된다.
설탕과 소금이 없어도 충분한 이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