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약국을 개업한 지 2년 차가 된 약사 이정현(가명)씨는 같은 건물에 입주한 병원의 갑질에 약사로서의 삶을 포기할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자료사진)
연합뉴스
올해로 약국을 개업한 지 2년 차에 접어든 약사 이정현(가명)씨. 그는 지난 1월 중순 약국 건물 2층에 있는 개인병원 원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떨린다고 한다. 이날 아침 10시 병원장 A씨는 이씨에게 고성을 내질렀다. 아침 9시 병원 개원시간보다 1시간 늦게 약국 문을 열었다는 이유였다.
A씨는 "아침 환자들 다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거 피해 금액에 대해 몇 천만원 갖고 와"라며 "안 그러면 나 용서 안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장의 흥분에 이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연신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원장의 폭언은 계속됐다. "나한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 인간은 가만 안 둬", "내가 여기서 장사를 안 해도 그쪽 하고는, 그쪽에 처방전을 줄 일은 없을 거야. 이제 앞으로…" 이씨는 원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 울먹이면서 "제가 다 배상하고, 각서 쓰겠습니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약국 닫을 수 없어 신혼여행도 접은 약사 부부
지난달 말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이씨 부부를 만났다. 이씨는 "그때 원장실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떨린다"면서 "정말 참담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아내 역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약국을 새로 열면서 결혼한 젊은 신혼부부였다.
지난 2018년 약대를 졸업한 이씨는 선배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잠시 경험을 쌓고, 아내와 함께 자신들의 첫 약국을 열었다. 이씨는 "약국 개업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현실에선 상식을 뛰어넘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만연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2월 고향인 천안에 내려와 약국을 알아본 이씨는 4층 건물 가운데 1층 약국을 소개받았다. 해당 건물 2층에는 가정의학과 개인병원 한 곳만 운영 중이었고, 건물 주인과 병원장은 서로 가족관계였다. 해당 병원이 연휴도 없이 문을 열기 때문에 약국 수익도 좋을 것이고, 병원도 건물 주인과 친족 관계라 오래동안 유지할 것이라는 기존 약사의 말을 이씨는 있는 그대로 믿었다. 그는 보증금 2억원에 월세 300만원(부가세 별도)에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게다가 약국 권리금으로 3억5000만원까지 지불했다.
이씨는 "전 임차인 약사는 '병원이 10년은 있을 것이고, 약국 운영에는 문제가 없으며 매년 3억5천은 남을 것'이라고 했다"며"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 이전시설비 등으로 7000만원 요구받아"
이씨는 약국을 인수한 후, 아내와 미뤄왔던 결혼식도 올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신혼여행은 꿈도 못 꾸었다. 이유는 임대차 계약서에 '임차인은 임대 부동산 2층 병원의 영업시간에 맞춘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이씨는 "2층 병원은 365일 휴일 없이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다"면서 "(건물주가) 특약으로 그와 같은 조건을 요구했고,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주말을 이용해 1박2일로 간소하게 호텔에서 지내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체했다"면서 "(그때는) 시간제 약사를 고용해 약국을 맡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장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그는 "병원장이 일요일에도 쉬지 말고 저에게 직접 영업하라고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신 병원 영업을 위해 약국을 이용해 왔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그는 제대로 된 휴일 없이 약국 문을 열고 일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건물주와 병원장으로부터 '병원 이전' 소식을 듣게 됐다.
'병원이 오래갈 것'이라고 믿었던 이씨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였다. 그는 병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 이전할 건물에 이씨 약국도 함께 옮겨가는 것으로 합의했다. 대신 건물 주인은 이씨에게 병원 없이 약국을 운영할 새로운 임차인을 찾아주는 조건으로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씨는 "어렵사리 새로운 임차인을 찾아 건물주에게 알렸지만,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줄 수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건물주가 병원 이전 시설비와 철거비 등에 7000만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돈이 없다고 했다는 것. 이씨는 "'왜 병원시설비를 약국에 떠넘기냐'고 따졌더니, 건물주는 되레 화를 냈다"고 회고했다.
병원의 지원비 요구는 엄연한 불법이다. 현행 약사법에는 처방전 알선 대가로 금전 등을 주고받는 경우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의사와 약사 모두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약사로서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
지난 8일 이씨와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 수화기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는 "지난 5월 이후 기존 약국을 새 임차인에게 넘긴 후, 다시 약국을 할 염두가 나질 않았다"고 말했다. 때마침 이씨 부부 사이에 아이도 태어났다. 그는 "원래 교대에서 공부를 하다가 의료인에 뜻을 두게 됐다"면서 "약학대 입학시험을 치르고, 약학 공부와 면허증을 땄지만 지금 현재의 내 모습에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학교 선배를 비롯해 약사회 등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이미 오랫동안 반복돼 온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데다 의사나 약사, 보건당국 등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없는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대부분 약국이 병원의 처방전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됐다"면서 "게다가 이를 이용해 병원 의사들은 여전히 각종 명목의 지원비와 처방전에 따른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많은 약사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자신들의 피해와 억울함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와의 마지막 인터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가끔 예전의 교대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합니다. 의료인이 되면 정말 잘할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접었죠. 지금은 '약사로서의 삶을 포기할까'는 생각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하지만 새로 태어난 아이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좀더 나은 삶을 위한 준비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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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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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늦게 약국 열었다고 "수천만원 보상" 요구한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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