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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들으려 300만원을?" 대학에 나붙은 분노 대자보들

[인터뷰] 등록금반환 대자보 쓴 동덕여대 학생들 "사비로 실습실 빌리기도"

등록 2021.07.15 07:17수정 2021.07.1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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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실한 온라인 강의에 항의하며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수십장 붙어 있다. ⓒ 권우성


"고등학교 때 내내 인터넷 강의(인강)를 듣다가 대학에 왔는데, 여기서도 인강을 들을 줄은 몰랐어요. 사이버 대학에 다니는 기분이에요. 결국 동기 중 절반은 올해 휴학했더라고요. 물론 대학 입학 후에 동기들도 실제로 만난 적이 없어서 가끔 카카오톡으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2020년 3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시작됐다. 수업은 모두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대체됐다. 대학 캠퍼스는 학생증을 받으러 한 번, 강의 자료를 받으러 한 번, 학교가 궁금해서 한 번, 딱 세 번 가봤다. 학과 동기들은 공지사항이 있을 때 잠깐 카카오톡에서만 이야기를 나눌 뿐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이른바 '코로나 학번', 동덕여대 20학번 박아무개(21)씨의 대학생활 1년이다. 

박씨는 1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학교 온라인 강의는 실시간 수업이 아니다. 교수님이 미리 강의를 녹화해 학교 온라인 시스템에 올려두면, 일정 기간 내 출석체크를 하고 수업을 듣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마저도 일주일에 2~3번은 온라인 시스템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대학 강의실 등 대학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학교는 등록금으로 무얼할까. 인문대에 재학중인 박씨는 매 학기 300여 만원의 등록금을 냈지만,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박씨는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하며 등록금에 보태고 있는데, 오프라인 수업이나 학교 행사가 하나도 없던 지난 1년, 학교는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어디에 썼는지 궁금증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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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실한 온라인 강의에 항의하며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수십장 붙어 있다. ⓒ 권우성


다른 학생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박씨에 따르면, 동덕여대 등록금반환본부가 지난 5월 재학생 265명에게 현재 수업 환경에 만족하느냐고 물었을 때 66.8%(177명)가 "불만족하다"라고 답했다. 이어 90.6%(240명)가 "등록금을 일부 반환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대학은 학생들의 요구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덕여자대학교 제54대 비상대책위원회 차원에서 대학에 등록금 반환 요구안을 다섯 차례 보냈지만, 한 차례 돌아온 답에서 학교측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박씨는 지난 4일 10여 명의 학생들과 '등록금을 찾습니다'라는 대자보를 작성했다. 그는 '고작 이런 온라인 수업 들으려고 300만 원을?', '등록금의 침묵', '400만 원 냈는데 학교에서 해준 게 뭔가요'라는 30~40장의 대자보를 대학 본관과 100주년 기념관 등에 붙였다.


"돈 내고 실습실 빌려... 집안 사정에 따라 학점 차이도"

"실습수업이 필요한 예체능계는 학기중에도 일부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했어요. 강의실을 둘로 나눠서 교수님이 왔다갔다 하면서 수업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수업의 질이 좋을 리 없죠. 게다가 실습실 사용도 문제였어요. 원래 학교 실습실은 24시간 개방했는데, 조교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오전 9시~오후 6시로 조정됐거든요. 결국 인근에 별도의 작업공간을 돈 내고 빌려서 실습했습니다."

박씨와 함께 대자보를 작성한 유아무개(22)씨도 코로나 시기 "수업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라고 주장했다. 동덕여대 19학번인 그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후의 학교생활을 모두 경험했다. 예체능학과에 재학중인 그의 등록금은 2019년에도 2020년에도 한 학기 당 400여만 원이었지만 학교생활의 변화는 컸다.

가장 큰 차이는 실습실 이용이었다. 중간·기말 과제부터 졸업준비까지 예체능계 학생들은 실습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대학은 코로나를 이유로 실습실 이용에 제한을 뒀다. 결국 유씨는 매달 30~40만 원을 내고 별도의 실습공간을 빌렸다.

그는 "예체능계는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오후 6시까지 실습실을 사용하고 그 날 연습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집에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사비로 실습실 등 연습공간을 빌리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이걸 못하니까 6시가 되면 실습실을 나가죠. 그 결과요? 중간·기말 성적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돈을 써서 별도의 실습실을 이용했던 애들이 A+를 많이 받았거든요. 결국 학교 서비스가 중단된 코로나 시기에는 대학 성적마저 집안 상황에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유씨는 "적어도 학교가 이런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학교 실습실을 사용하는데 제한이 있다면, 학교가 실습비를 지원하거나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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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실한 온라인 강의에 항의하며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수십장 붙어 있다. ⓒ 권우성


이는 동덕여대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등록금을 돌려달라"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중심이 돼 구성된 등록금반환운동본부는 "코로나로 대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당했다"며 2020년 7월부터 전국 42개 대학과 정부를 상대로 등록금 반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사립대에는 학생 한 명당 100만 원, 국·공립대에는 1인당 50만 원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올해도 전국 대부분의 대학은 등록금을 동결했다.

유씨는 "대학이 무조건 코로나 핑계만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덕여대는 적립금 2200억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대학"이라며 "코로나 시기 대학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지원할 수 있는지, 어떻게 수업환경을 보완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늦었지만 대학은 이제라도 등록금 일부를 학생들에게 반환하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동덕여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는 알고 있지만 대학측에서 공식적으로 이에 관련한 입장은 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등록금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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