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성성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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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되는 책이다. 무려 700페이지에 가깝다.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염려 붙들어 매시라. 읽으면 읽을수록 한 인간으로서 '나'를 발견해가는 꿀맛이 마지막 페이지로 이끈다.
베티 프리단이 이 책을 쓸 무렵(1963년)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정의 울타리 안에 모습을 감추었던 때였다. 그녀들은 여성성의 신화에 인생을 걸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여성다운 삶이라는 사회문화적 인식이 그녀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온갖 매체와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여성들의 생활을 규정하고 그들의 꿈을 반영했다.
겉으로 보기에 '가정주부'로 사는 그녀들은 당당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 분열을 견딜 수 없는 여성들은 자살로 내몰리기도 했다. 시인 앤 섹스턴(1928~1974년)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다. 앤 섹스턴의 '가정주부'는 그 당시 여성들의 절망을 묘사한다.
어떤 여자들은 집과 결혼한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피부: 그것은 심장을 가졌고,
입을 가졌고, 하나의 간과 똥을 가졌다.
벽들은 불변하며 핑크빛이다.
보라 그녀가 하루 종일 어떻게 앉아
충실하게 제 자신을 씻어 내리고 있는가를.
남자들은 강제적으로 들어간다. 요나처럼 되돌아와,
그들의 살의 엄마들에게 들어간다.
여자는 그의 엄마다.
그것이 중요한 일이다.
앤 섹스턴의 '가정주부'
당시 여성의 역할을 규정하는데 프로이드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여성을 남성을 사랑하고 남성의 욕구를 채워주며 남성에게 사랑받음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어린아이 같은 인형"으로 규정했다. 이것은 여성들이 교육, 자유, 권리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다.
게다가 자본주의 상술은 여성들의 가사 노동의 영구화를 환영했다. 소비지향적인 삶과 물질의 소유가 그녀들을 구원해줄 것처럼 미끼를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들이 여성성의 신화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에 베티 프리단은 도발적 의문을 던진다.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문제'가 무엇일까.
여성들의 자아 찾기, 모두에게 중요한 일
베티 프리단은 여성들이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들만을 위해 살 때, 삶의 의욕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가사는 특별히 숙련된 기술이나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이라 거기에서 어떤 성취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자아 정체성에 대한 욕구, 자아 존중에 대한 욕구, 성취하고픈 욕구, 독톡한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인정될 때 사람은 인간다워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사회적인 공헌과 인정을 통해 자신을 쓸모있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이제는 여성들이 더 '여성적'이 되도록 촉구하는 것도, 어머니들에게 아이들을 더 '사랑'하라고 촉구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 그러한 요구는 여성을 비인간화한다. 게다가 이런 여성들의 헌신은 자녀들에게 의존감과 수동성을 심어줄 뿐이라고 못을 박는다.
<여성성의 신화>(1963년)는 영화 <댈러웨이 부인>, <모나리자 스마일>, <디 아워스>, <82년생 김지영> 등 여성 영화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한다. 제2세대 페미니즘 운동에 불을 붙인 것도 이 책이다. 비록 당시 백인 중산층 여성만을 대표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명저임에 틀림없다. 첫 출간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나에게 크게 공명하니 말이다. 여전히 가사와 양육이 여성들의 역할로 규정되고, 직업의 세계에서도 돌봄 노동과 감정노동이 여성들의 몫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겠다.
베티 프리단은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남편이나 자식을 통해 살지 않아도 돼. 자기를 발견하고 성취하는 삶을 살아봐. 그러면 마침내 자기 자신이 되어 남녀가 서로 더 잘 이해하게 되지. 공동선의 기준을 함께 만들어 갈 때, 새로운 사회가 열릴 거야.'
여성성의 신화 -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베티 프리단 (지은이), 김현우 (옮긴이), 정희진 (해제),
갈라파고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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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에 나온 책인데... 저를 뜨겁게 흔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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