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30일(미국 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델라웨어주 뉴캐슬에 있는 델라웨어 메모리얼 브릿지에서 열린 현충일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AP
조 바이든 행정부가 워싱턴 시각으로 12월 9일부터 2일간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11일자 백악관 브리핑은 "우리 시대의 도전은 자국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보다 넓은 세계가 직면한 최대 문제점들을 다루는 방법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구현돼 나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했다. 민주주의를 근본 가치로 내세우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을 재차 표명한 것이다.
그런 뒤 '권위주의에 대한 방어, 부패와의 싸움, 인권 존중의 증진'을 위해 민주주의국가의 정상들뿐 아니라 시민사회·자선단체와 민간 분야의 지도자들까지 초청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냉전 구도의 신호탄
향후 한 달간 돌발 변수가 발생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2021년이 갖게 될 세계사적 의의 중 하나를 정리한다면,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조지 부시 행정부가 깔아놓은 신냉전 구도의 잔재 중 하나가 20년 만에 청산된다는 점이다.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바이든의 공언대로라면 9월 11일 이전에 군대를 완전히 철수시키게 된다. 반미세력인 탈레반이 아프간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도, 지난 10일 바이든은 '아프간인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며 완전 철수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런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부시 행정부가 대테러 전쟁에 입각한 신냉전 구도의 일환으로 만든 '미국 대 아프간'의 전쟁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런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를 통해 신냉전 질서를 새롭게 출범시키겠다는 것이 바이든의 의중이라고 볼 수 있다. 12월 행사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내놓는 새로운 구도의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상회의 초청장은 몇 주 내에 나온다. 초청장이 평양·베이징·모스크바로 향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서는 터키와 헝가리도 배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중동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터키, 극우로 치우친 헝가리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계심을 반영하는 보도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베 신조 내각과 협조해 구축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위하는 것에 중점을 둔 데 비해, 바이든 행정부가 지향하는 전략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중국뿐 아니라 북한·러시아 등까지 한 데 묶어 포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질서가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라는 경제체제를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바이든이 추구하는 신냉전은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라는 가치를 매개로 전개된다. 제1기 버락 오마바 행정부의 중반기 때부터 부각된 트렌드인 가치외교를 기반으로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가치외교를 운운하고 있다. 일례로, 파리 시각 지난 5월 21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과의 면담 뒤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토 회원국은 나토의 가치를 따라야 한다'고 발언했고 이는 터키를 겨냥하는 발언이었다고 해석됐다. 가치를 앞세워 경쟁국을 겨냥하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는 장면이었다.
일본 역시 가치를 근거로 동지국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고 있다. 전통적인 동맹국과 별도로,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을 동지국으로 묶고 있다. 지난 1월 29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대신은 기자회견 때 '일본·미국·호주·인도의 4개국 관계'는 동지국 관계로 묶어 설명하면서도 '한국·미국·일본의 3개국 관계'(A)는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다. 동지국이 아닌 국가가 A에 포함돼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가치외교는 미국이 말하는 '권위주의 진영'에서도 구사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가치외교를 통해 세력팽창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지난 7월 1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패권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 데서도 나타나듯이, 최근 들어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일방주의나 편 가르기를 비판하는 말들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일방주의나 편 가르기는 옳지 않다는 가치관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다국적 국제질서라는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이것과 저것이 대립하는 미국식 국제질서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이 공존하는 다국적 국제질서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들이 저마다 가치외교를 내세우는 데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와 달리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는 상대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바이든이 제2차 대전 직후의 트루먼 행정부처럼 손쉽게 냉전질서를 구축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수도 있다.
이처럼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 가치외교에 주력하는 것은 아무래도 외부보다는 내부 사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선 운동에서도 나타났듯이,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많이 훼손됐다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시각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등으로 내부 분열이 심각해지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산층이 위협받는 현 위기의 밑바닥에 민주주의의 약화가 있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관점이다.
이 같은 내부 상황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동맹국이든 적대국이든 간에 미국이 외국 문제에 간섭할 때 항상 언급하는 것이 인권과 민주주의다.
최근 들어 미국이 벨라루스(폴란드와 러시아 중간)와 러시아를 자주 비판하는 것도 두 나라 정권이 야당이나 반정부 인사들을 과도하게 핍박하기 때문이다. 도쿄 올림픽 기간 중인 지난 4일 벨라루스 육상선수 크리스치나 치마노우스카야가 팀을 이탈해 폴란드로 망명한 사건이 특별히 주목을 받은 것도 미국이 벨라루스를 비판하던 상황에서 이 사건이 돌출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명분으로 외국 내정에 간섭해온 미국에서 소수민족 차별 사건이 빈발하고 중산층이 무너지게 되면 미국의 세계 리더십도 덩달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 가치외교를 표방하는 것은 이를 통해 소수민족과 중산층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세계문제에 개입할 명분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2월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는 대외용인 동시에 대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약화되는 미국 패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