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선물아기에게 300일 기념으로 선물한 귀여운 비누꽃 꼬마곰, 찬란하고 아름다운 분홍색이다.
최원석
300일을 기점으로 아기는 또 다른 성장통을 겪고 있다. 윗니가 나려고 아픈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하루에 많은 시간을 울기도 했다. 두 달 전 아랫니가 날 때에도 아파하는 아기를 보면서 마음을 졸였는데 또 아기에게 성장통이 찾아온 것이다.
아랫니가 날 때보다 아기는 더 힘들어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해 둔 약품들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악을 쓰며 자다가도 일어나서 우는 시간이 늘어나자 아기 엄마와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약품들을 아기에게 발라주고 먹여주었다.
아기의 진통제와 잇몸에 통증을 줄여준다던 허브 성분의 캔디와 연고였다. 하지만 효과는 그때뿐이었고 아파하는 아기와 그를 바라보며 속이 타들어 가는 부부의 인고와 고통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기가 10개월이 되면서 시작된 변화는 부쩍 소리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간단한 외마디 외침 같은 단어였는데 '아' 하고 길고 짧게 소리를 지르는 것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이 소리를 내는 이유가 혹 이가 아파서일까 하고 부부는 마음을 졸이고 아기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제의 일이다. '음~~~ 마' 갑자기 아기가 소리를 냈다. 부부는 잠시 놀라 눈을 마주쳤다. 내가 먼저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방금 아기가 엄마라고 한 거 아니에요?"
"글쎄... 설마... 우연이겠지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엄마라고 한 적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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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라고 부르는 아기 처음으로 엄마라고 입을 뗀 아기 ⓒ 최원석
"음~~~ 마, 음마... 엄~~~ 마"
그때였다. 아기가 엄마라는 단어를 갑자기 핀 꽃송이처럼 딱 한번 터뜨리고는 엄마라는 단어를 계속 연습하려는지 엄마, 엄마 소리를 내었다.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아내는 아기에게 '엄마'라고 해야지 하면서 아기의 눈앞에 입모양을 보여주며 친절히 발음을 다시 알려 주었다.
미안하고 너무도 감사했다. 밖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아기의 성향을 발견하고도 쉽게 외출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아기는 타인의 말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고작 엄마와 함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부였고 아빠는 자주라고 해도 항상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 늦어지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아기가 엄마를 부르는 모습. 아빠로서 그 광경을 경험한다는 것은 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아기는 엄마라고 외마디를 뱉어낸 오늘을 위해 여태까지 여러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책에서 본 글귀가 문득 떠올랐다. 아기가 적어도 엄마라는 단어를 한번 하기까지 삼천 번에서 오천 번을 들어야만 하고, 아기가 그것을 발음하기까지는 이만 번의 실패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던 내용이었다.
"여보. 축하해. 진짜 엄마가 됐네요."
"그러게요. 기분이 이상하네요. 그토록 기다렸던 단어인데..."
엄마라는 단어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개월의 시간들을 소환해 냈다. 아기는 집에서 매일 시기에 맞는 행동을 하며 크고 작은 기적들을 엄마와 함께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기는 때에 따라 스스로 기고 잡고 서고 이제는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자주 먹었던 제철 과일이 자연 속에서 영글어가듯, 아기는 집에서 이렇게 하나하나, 자기 발전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