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출마를 선언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남소연
- 정의당이 늘 마주하는 벽이 수권 가능성이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득표가 201만표(6.17%)였다.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했나.
"당시 정의당 지지율이 2~3% 수준이었다. 과연 정의당이 독자정당으로 설 수 있느냐 기로에 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저는 그때 당에도 얘기했다. 이번 대선을 'What is the Justice Party?(정의당이란 무엇인가?)' 이것 딱 하나만 갖고 선거를 치르겠다고.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정의당이란 게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당인지만 전달할 수 있다면 후회가 없겠다고. 최종 득표율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정의당의 존재 이유는 국민들에게 또렷이 새기지 않았나 싶다."
- 지난 대선 201만표는 역대 진보정당 최다 득표였지만, 동시에 진보정치 20년 결과물로서는 한계를 보였다는 진단도 있다. 특히 최근 정의당의 침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작년 총선 때 정의당 정당득표율이 9.7%였다. 10% 가까이 됐다. 나는 지금 정의당의 침체가 결코 시민들의 지지가 적어서라고 보지 않는다. 이걸 당에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 다만 워낙 지난 총선 때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대한 기대가 높았고, 그게 결국 좌초되면서 낙담하고 좌절한 당원들이 많다. 기대의 역설이랄까... 또 지난해 제가 당대표에서 물러난 뒤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현재 당이 매우 위축돼있는 건 사실이지만, 정의당이 똑바로 잘 해서 삼분지계의 정치교체를 하라는 시민들 요구는 여전하다고 믿는다."
- 과거 진보정당은 무상급식, 최저임금 1만원 등 굵직굵직한 화두를 던지며 한발 앞서 사회를 이끌었다. 그런데 진보정치가 언제부턴가 구체적인 미래 아젠다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선명성과 아젠다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게 지금 정의당 위기의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진보정당은 나름대로 기후위기, 페미니즘, 노동, 불평등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히려 우리에게 부족한 건 정책투쟁이 아닌 정치투쟁 아닌가 싶다."
- 얼마 전 단병호 전 의원을 만난 영상에서도 "결국은 정치적인 힘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전략이 중요한데, 지금까지 진보정당은 그 개념이 부족했다"고 했던데, 비슷한 얘기일까.
"그렇다. 작년에 당대표를 내려놓고 개인적으로 진보정치 20년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든 생각이다. 진보정당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보다 확고한 공적 권력의지를 가졌어야 했다는 거다. 우리는 그냥 좋은 정책과 비전을 내서 열심히 홍보만 잘 하면 저절로 권력 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이브(순진)했다. 정책투쟁 말고도 정치투쟁을 계속 했어야 했다. 예전에 노회찬 대표가 주도했던 1인 2표제(지역구·정당 투표 분리)가 있었기에 민주노동당이 (2004년) 처음 의석을 만들었던 것 아닌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선거제도나 양당 중심의 기득권 체제, 기득권 정치구조를 깨기 위한 정치투쟁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 지난해 총선 전 선거제 개편 당시 당대표로서 그 '공적 권력의지'를 더 발휘할 수는 없었나. 일각에선 정의당이 기대치보다 낮은 성적을 낸 데 대해 심상정 당시 대표의 책임론을 제기한다.
"사람들이 아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총선 전 정의당과 민주당이 선거제와 공수처를 딜(거래)했다는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민주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거제를 개편할 생각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한 2개월쯤 됐을 때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내게 한 말이 지방선거(2018년 6월)까지는 민주당 단독 책임정부로 가겠다는 거였다. 정의당이 어떤 요구를 한 바가 없는데도 그렇게 나왔다. 그래서 말했다. 협력 정치는 대통령 힘이 셀 때 제안해야 야당에서 받아들이지, 대통령 인기 떨어지면 성사될 수 없는 거라고. 이런 게 소수 정당의 비애다.
작년 총선 전 선거법, 공수처법 국면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민주당은 선거법뿐만 아니라 공수처법도 총선 전에 처리할 생각이 없었다. 민주당의 기본전략은 적폐청산의 성과로 총선을 치르고, 총선 이후 문재인 정부 말기에 공수처법을 처리해 대선 국면으로 간다는 거였으니까. 그게 이른바 민주당 586세력과 이해찬 전 대표의 '20년 집권론'이었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생긴 게 조국 사태였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다. 그러자 민주당은 보다 노골적으로 선거법 말고 공수처법만 처리하자고 표변했다. 당시만 해도 단독으로 법안 처리가 불가능했던 민주당은 정의당 이외 교섭 대상이었던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뭐하러 심상정이랑 정의당 좋은 일 해주냐, 공수처법만 하자'고 설득했다. 심지어 게리멘더링(선거시 특정 세력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까지 해주면서 선거제 개혁 연대를 분열시켰다.
그런데도 끝까지 민주당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은 분들이 있었다. 김성식, 채이배,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 같은 분들이다. 갖은 술수에도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자 민주당은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선거제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마저도 비례 위성정당 창당 등으로 엎어버렸다. 민주당의 '20년 집권론'에 정의당이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뒤통수를 친 거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제도 개선 투쟁을 한 거고, 민주당은 권력 투쟁을 했다. 그때 '아, 우리가 집권 의지를 갖는 정당이 되기엔 너무 나이브하구나' 하고 절실히 깨달았다. 앞으로는 결코 기득권의 선의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 대선에서도 민주당과의 단일화는 없을 거란 얘기 같다.
"그렇다. 지금 시민들은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양당정치에 대한 실망이 크다. 그래서 정의당이, 심상정이 희망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 이번 선거가 양당체제를 종식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다당제 하의 책임연정으로 갈 수 있는 전기가 됐으면 좋겠다."
- 2017년 대선이 끝난 뒤 출간된 자서전 <난 네 편이야>에서 "유세에 나서기 전 유세장이 텅 비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됐었다"고 썼더라. 지금도 그런가.
"사실 그때도 당에선 우리가 후보를 왜 내냐, 낸다고 의미 있는 득표가 나오겠냐, 또 단일화 압박에 시달리지 않겠냐 등등 비관적인 말이 많았다. 큰소리를 쳤지만 나라고 왜 안 불안했겠나. 각 광역 지자체에 방송차 한 대씩 밖에 못 두고 선거 치렀다. 유급 선거운동원도 없었다. 과연 누가 날 보러 오실까 생각했다. 그래서 유세 장소도 일부러 좁은 골목에 주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유세장을 다녀보니 곳곳마다 시민들이 바글바글한 거다. 무슨 일이지 싶었다. 단상에 올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심상정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은 팬들이 왔다기 보단, 절박하고 위로받고 싶고 희망을 찾고 싶은 시민들이 거기 있었다. 나도 모르게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유세가 끝나면 단상 아래로 내려가 하나하나 포옹했다. 그때의 절절한 감촉을 잊을 수 없다. 꼭 껴안은 시민들은 귀에 대고 각자의 사연을 들려줬다. 나로서는 은혜로운 경험이었다.
이번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끝내고 싶지 않다. 저를 더 크게 써주셨으면 좋겠다. 시민들께서 당신들의 삶을 위한 정치를 밀고 올라가실 때에, 부디 저 심상정을 도구로 써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