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아이들에게 긴 이야기책을 매달 한 권씩 읽어주고 있습니다.
진혜련
요즘 교육계 핵심 키워드는 단연 '문해력'이다. 교육 현장에 있다 보니 아이들의 문해력은 어떤지, 정말 심각한 수준인지 질문을 받곤 한다. 사실 아이마다 편차가 커서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어 말하긴 어렵다. 다만 15년 이상 아이들을 가르쳐 왔기에 과거의 아이들과 현재 아이들을 비교하여 볼 수는 있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읽고 쓰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이것은 교사로서 확실히 체감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은 읽고 쓰는 것 자체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보다는 유튜브에서 영상을 검색하고, 알림장을 쓰자고 하면 필기하는 대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내가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쳐보니 다른 어떤 것보다 '읽고 쓰는 능력'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 공부와 배움은 그것이 전부였다. 내가 말하는 '읽고 쓰는 능력'은 글을 읽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 자기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으로 반드시 문해력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제자들이 졸업 후 전해주는 소식을 들어보면 문해력이 뛰어났던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빛을 보았다. 튼튼한 문해력은 언제든 도약하는 힘, 역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된 이유
그럼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찾은 방법은 '함께 읽고 나누기'였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서는 일단 읽어야 하는데, 독서를 부담스럽고 지겨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길 바랐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라'라고 말하는 대신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매일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전 먼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을 만난 첫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온 일이다. 4학년인 아이들에게 매달 긴 이야기책을 한 권씩 읽어주고 있다.
3월에는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4월에는 <멀쩡한 이유정>, 5월에는 <빨강 연필>, 6월에는 <수상한 북어>, 7월에는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8월에는 <초정리 편지>, 9월에는 <소리 질러, 운동장>을 읽었다(6월에 읽은 책은 시집이었다). 나는 과장된 연기 없이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매일 10분씩 책을 읽어준다.
"오늘은 여기까지 읽겠습니다."
"아. 조금만 더 읽어주시면 안 돼요?"
"선생님. 드라마 끝날 때 같아요. 아쉬워요."
사실 책을 보지 않고 듣기만 하는 것으로 아이들이 과연 잘 집중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주니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세 이야기에 빠졌다. 아이들 말로는 오히려 보지 않고 들으니 더 많이 상상할 수 있어 재밌다고 한다.
아이들은 매일 책 읽어주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게 좋다고 했다. 꼭 어렸을 때 엄마가 책 읽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은 책 읽어주는 시간을 학습이 아닌 사랑과 교감을 나누는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그건 내가 가장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보통 책을 읽고 며칠이 지나면 책 내용이 가물가물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꽤 기억나는 책이 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책, 그런 책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나면 이야기를 나눈다. 일명 '책수다' 시간으로 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자유롭게 말한다. 나는 선생님답게 교육적으로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친구와 수다를 떨 듯 편하고 가볍게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