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당연하게 출생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문제

[출생확인증 조례를 위한 시흥시민의 연대 1]

등록 2021.10.12 14:55수정 2021.10.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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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주민들은 현재 '시흥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주민청구 조례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생확인증이란 태어난 모든 아동에게 발행하는 시흥시의 증서입니다. 출생 즉시 모든 아동의 존재를 기록하는 시흥시의 공적 책무를 촉구하고자, 그와 함께 사회 구석구석 관심의 눈길을 넓히고자, 조례제정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아동이 출생 직후 차별 없이 존엄함을 존중받는 아동친화도시 시흥시를 소망하며, 앞으로 총 5회에 걸쳐 '출생확인증 조례를 위한 시흥시민의 연대'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우리동네연구소와 함께 출생확인증 조례 운동을 기획하고 참여 중인 김희진 변호사(국제아동인권센터 전 사무국장)가 작성했습니다[기자말]
출생이 기록된다는 것. 누구에게나 당연한 걸까. 아니다. 한국에서는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다.

출생의 주체는 아동기에 있는 사람이다. 세상(生)에 나오는(出) 그 순간부터 사람의 존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기록의 주체는 아동을 둘러싼 세상이다. 아동과 가장 밀접한 사회인 가정은 물론 이들이 살아가는 지역사회, 국가를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이란 공문서에 쓰인다는 과정과 결과를 말한다. 사회질서와 안전 유지를 목적으로 시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공공은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들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찾고 시행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1989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이 '태어난 즉시 출생이 등록될 아동의 권리'를 명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욕구와 필요는 놓쳐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출생등록은 '어디에서나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the rights to recognition everywhere as a person before the law)'로서, 인권 보장의 출발점이며 인권 보장의 필수적 전제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당연한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

우선, 한국에서는 출생신고가 있어야 출생이 등록된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부모를 신고의무자로 정하는데, 이때에도 부는 원칙적으로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제46조 제1항).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제46조 제2항). 예외적으로 부 또는 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동거하는 친족,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 또는 그 밖의 사람 순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지만(제46조 제3항), 현실에서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을 만큼 사회적으로 소외된 상황이라면 의지할 수 있는 동거친족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름을 짓지 못해 1개월 이내의 출생신고 기한도 종종 지켜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의 인적 정보와 아동의 이름(한자어 포함)까지 기재하는 출생신고 서류 작성을 의료진에게 기대하기도 사실상 어렵다. 신고가 없으면 등록이 안 되는데, 출생신고의 행위가 부모에게 오롯이 맡겨져 있는 현실이다.

물론, 공공이 아무런 역할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태어난 때로부터 1달 이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라면,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제122조). 최소한 언제까지는 출생신고하라고 통지(최고)할 수도 있고(제38조), 이때에도 출생신고를 안 하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제121조). 즉, 5만원 또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얼른 출생신고하라고 독촉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출생은 기록될 수 없다.

다행히 예외는 있다. 2016년 5월 개정된 가족관계등록법은 "신고의무자가 제44조 제1항(1개월)에 따른 기간 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아니하여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의 신고를 할 수 있다"고 정하여, 어떠한 이유로든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공공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끔 보완적 절차를 마련하였다(제46조 제4항).


아동을 출생등록 하지 않는 것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와 국내 법원 및 행정이 명시하는 '방임'의 한 예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자녀의 복리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부모의 사망 등으로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복잡한 법률관계나 빈곤, 무지는 출생신고를 안 하거나 못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미신고 아동을 알게 되었다면, 출생신고를 하라고 부모를 설득하기에 앞서, 신속하게 출생등록부터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잘 이용되지 않는다.

제도 도입 5년이 지나도록 관계 공무원이 직권 출생신고 규정을 잘 모르거나, 민원 등을 이유로 부모가 안 하는 출생신고를 대신하기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심지어 직권 출생신고 규정은 신고의무자가 단순히 출생신고를 게을리하는 것이 아닌 부모의 사망과 같은 신고불능사유가 있는 때에만 후순위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제한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결국 부모나 사실상 양육자가 어떻게든 출생신고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설득하고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기간은 짧으면 몇 개월, 길게는 수년에 이른다.

극히 낮은 빈도로 검사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아동의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동이 발견된 때에나 적용할 수 있다. 즉, 우연히 출생신고 안 된 아동이 발견되지 않는 한, 출생이 기록될 여지는 없다. 아동학대 의심사례를 발굴하듯 이웃에 대한 관심이 실천되지 않는 한, 출생미신고 아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남겨진다. 아동을 위한 각종 제도는 기록되지 않은 아동에게 닿을 수 없다.

한편, 출생신고와 관련한 일련의 법적·행정적 절차를 정하는 가족관계등록법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부 또는 모가 한국인이 아닌 이주아동은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을 기록할 수 없다. 부모의 국적국에 출생신고를 하면 된다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없는 나라가 30여 개가 넘는데, 이 경우 인근 나라에 있는 외교공관에 우편과 전화 등으로 출생신고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비용부담은 물론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만약 이주아동의 부모가 난민 신청자이거나 난민 인정자라면, 박해를 피해 온 나라의 외교공간을 어떻게 찾겠는가. 미등록이주민 부모도 체류자격 등 신분상의 문제로 본국 정부에 자녀를 출생신고 하기가 어렵다.

구구절절 법률의 내용을 읊어본 이유는, '누구나 당연하게 출생이 기록되지 않는 문제'를 말하고 싶어서이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른 출생신고 문제를 말하면, 대부분 도대체 어떤 이유로 출생신고를 안 하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출생신고를 안 하거나 못 하는 이유가 아니다. 부모의 의지나 상황에 따라 아동의 출생에 대한 공적 기록이 누락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을 사실상 방치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왜'의 초점은 사연이 아니라, 현상에 있어야 한다.

왜 아동의 출생을 기록하지 않느냐는 문제. 이 문제에 초점을 두어,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잔혹한 아동학대에 분노하는 마음만큼, 각종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하고 대처하는 첫 번째 방법은 '존재의 확인'이라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이 마음에 주민청구조례안으로 '시흥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 제정 운동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서명권자 워크샵 출생확인증 시흥시 조례청구 ⓒ 우리동네연구소(시흥)

 
※ 조례운동과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www.instagram.com/siheung_lightitup/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생확인 #아동권리 #조례운동 #시흥시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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