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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불법도박에 빠진 17세 소년이 겪은 기막힌 일

[소년 보호관찰 이야기3] 청소년 도박 중독과 2차 범죄의 심각성

등록 2021.12.20 07:13수정 2021.12.20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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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불법 도박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불법 도박최원훈

17살 소년은 절도와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소년부 판사는 장기 보호관찰 처분(2년)과 사회봉사 명령을 결정했다. 중학교 때는 학급 회장을 하면서 학급 구성원을 화합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고교에 진학하면서 인터넷 불법 도박을 하는 친구들과 교제했다. 친구의 권유와 호기심으로 도박을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손쉽게 도박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었다. 성인 인증 절차는 없었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회원가입이 됐다. 가입 즉시 사이트에서 가상계좌를 만들어 줬고, 계좌를 통해 판돈이 오갔다. 바카라, 룰렛, 스포츠토토 등의 다양한 도박 중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

처음엔 5만 원으로 100만 원을 벌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하루 10시간씩 도박을 했다. 많이 땄을 때는 500만 원까지 계좌에 들어왔다. 명품 신발도 사고 오토바이도 구입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욕심에 딴 돈을 쓰지도 않고 전부 도박에 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잃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이미 도박에 중독된 소년은 외할머니의 통장에서 돈을 빼내서 베팅을 했다. 부모가 이혼한 후 홀로 소년을 키우며 보호자 역할을 했던 외할머니였다.

결국 그동안 번 돈을 모두 잃은 소년은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서 다시 도박을 했다. 고금리 대출을 해주는 불량 선배들을 소개받아 사채도 빌렸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도박으로 한 번에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도박 중독과 2차 범죄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다
 
 온라인 불법도박으로 수천만 원의 빚을 진 소년은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했다.
온라인 불법도박으로 수천만 원의 빚을 진 소년은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했다. 픽사베이

수천만 원의 빚을 진 소년은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했다. 편의점과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박 빚을 갚았지만, 이자와 원금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함께 거리를 배회하며 절도와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마트에서 식료품을 절도하고, 중고거래 사이트에 판매 글을 올려 돈을 입금받고 물품을 보내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소년은 오토바이를 훔쳐서 밤거리를 폭주했다.


소년이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의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가진 것은 소년부 법정에 섰을 때였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소년이 수천만 원의 도박 빚을 지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6개월이었다.

보호관찰 신고를 하러 온 소년은 덤덤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는 잃은 돈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본전만 되찾으면 다시는 도박을 안 할 거라고 다짐했어요."

현재 소년은 식당 주방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면서 빚을 갚고 있다. 직장과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어 혼자 자취를 하면서 보호관찰 담당자의 지도·감독을 받고 있다. 쉬는 날에는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일도 한다.  

"가끔 혼자 있을 때는 눈물이 나요. 일하고 잠자는 생활만 반복하다 보니, '난 왜 이렇게 살고 있나'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이 있어요. "

보호관찰 담당자가 소년의 자취방을 찾아갔을 때, 구석에 소주병들이 쌓여있었다. 소년은 보호관찰소의 연계와 지원을 받아 심리상담사와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고 있다. 

"제 꿈이 요리사거든요. 힘들지만 식당 주방에서 요리도 배우고 음식도 직접 만들면서 일할 수 있어서 좋아요. 또래들보다 뒤처지고 있지만 빚 다 갚고 보호관찰도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겠죠? "

소년은 앞으로 보호관찰 담당자의 지도와 도움을 받으며 재범 없이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소외계층을 돕는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나눔과 배려가 무엇인지를 체득할 것이다. 

전체 소년범죄 중 절도·사기 등 재산범죄가 약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재산범죄는 가출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위기상황에 놓인 청소년이 유흥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가 상당수였지만, 최근에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한 2차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친구와 선후배로 얽힌 10대들 간의 고리대금은 폭력과 협박, 공갈 등의 범죄를 확대·재생산한다. 가정과 학교의 보호를 받으며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소년들이 채무의 늪에 빠져 청춘을 저당 잡힌 채 하루 벌어 빚을 갚는데 급급하고 있다.

문제는 온라인 불법 도박이 10대들 사이에 유행이 된 지 오래지만, 학교에서 실시하는 예방교육 이외에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소년이 온라인 도박판에서 베팅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불과 10초였다. 10초 만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행심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를 보고 배운 것은 아닐까? 청소년 도박 중독과 도박에서 비롯된 범죄에 대한 사회적 성찰 및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청소년 도박 #보호관찰 #소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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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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