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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회 간부 무죄... 고 문중원 기수 유족 오열

[현장] 부산지법 서부지원 "혐의 입증 어렵다"... 공공운수노조 "면죄부" 반발

등록 2021.11.17 16:14수정 2021.11.1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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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 고 문중원 기수와 관련한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 관계자 등의 재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직후 유족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 김보성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불러온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부산경남본부) 관계자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고인이 경마장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지 약 2년 만에 내린 판결이다. 유죄가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던 유족들은 "법이 이럴 거면 왜 존재하느냐"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17일 오후 2시 서부지원 201호. 선고가 끝나자 재판장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고 문중원 기수 유족과 동료들은 법정을 나와 "이건 대한민국 법이 아니다"라고 항의를 표했다. 한 가족은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데 어떻게 무죄가 내려질 수 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라며 반발했다. 고광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장의 입에서는 "저 사람 때문에 3명이나 죽어 나갔다"라는 분노가 터져 나왔다.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전 경마처장 A씨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여러 질문에도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으로 재판장에 섰던 A씨가 이대로 법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문 기수의 부인인 오은주씨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한참을 오열하던 오씨는 주변의 부축을 받고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1단독(김석수 부장판사)은 이날 연 선고공판에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 전 경마처장 A씨와 조교사 B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들을 불구속 기소했던 검찰은 A씨가 조교사 개입심사에 지원한 B씨 등 2명의 자료를 사전에 검토해준 혐의가 있다며 1~2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피고인에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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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 고 문중원 기수와 관련한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 관계자 등의 재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직후 유족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 김보성

 
재판부는 "제시된 증거를 살펴보면 A씨가 조교사 개업 자료를 검토한 2018년에는 신규 조교사 선발이 예정돼 있지 않아 업무를 방해하거나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라며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어렵다"라고 무죄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재판부는 A씨 등에게 "기소된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부산지법 홈페이지 등에 무죄 확정 사실을 공지할 수 있다. 이에 동의하느냐"라고 물었고, A씨 등은 "네, 희망한다"라고 답했다.  


고인의 2주기를 앞두고 열린 재판에서 무죄가 내려지자 유가족과 노동조합은 강하게 반발했다. 유죄를 예상한 이들은 이번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문 기수의 부친인 문군옥씨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라며 격앙돼 있었다.

그는 "세상이 뒤집히지 않은 이상 어찌 이럴 수 있느냐. 절대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옆에서는 고인의 부인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계속 눈시울을 붉혔다. 오씨는 고인에 대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쏟아지는 눈물을 훔쳤다.

동료 노동자들은 "어이없는 판결이 나왔다"라고 반응했다. 리화수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장은 "아까운 마사회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재판부가 고의성, 위법성, 위계 등 아무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한민국 법원에는 사법정의가 없느냐"라며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위로해야 하는 게 사법부의 역할이 아니냐"라고 물었다.

검찰에 즉시 항소도 촉구했다. 리 본부장은 "바로 항소해서 이번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마사회를 새롭게 변화시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이들은 "고인의 2주기 전 죽음의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중단없는 투쟁을 통해 열사의 뜻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고 문중원 기수는 지난 2019년 11월 한국마사회의 갑질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고인의 유족과 노조는 ▲진상규명 ▲한국마사회의 공식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장기간 거리 농성을 펼쳤다. 결국, 100여일 만에 장례가 치러졌고, 한국마사회는 문 기수 죽음으로 드러난 내부 문제를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경찰은 지난해 7월 A씨 등을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고, 검찰도 이들을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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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 고 문중원 기수와 관련한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 관계자 등의 재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직후 유족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문 기수의 부인인 오은주씨(왼쪽), 문 기수의 부친인 문군옥씨(오른쪽). ⓒ 김보성

#문중원 #부산지법 #서부지원 #오은주 #김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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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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