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신촌역 역사(驛舍)집 모양은 물론 기능도 바뀐 채, 한켠으로 물러나 있음.
이영천
1986년 "이 나라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는 야당 국회의원의 당연한 말에, 영혼 없는 언론이 촐싹거리던 즈음이다. 선후배 몇이 능곡으로 모꼬지 가면서, 이 집에서 열차를 탄다. 모꼬지에서 논쟁은 찌르고 베는 칼처럼 서슬 퍼렇게 날 선 것들이었다. 서로 간 차이가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으로 부딪친다. 막걸리는 비워져 나가고, 부딪치는 논쟁은 차비마저 탈탈 털어 모두 마셔 버리게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모두가 난감하다. 돌아갈 차비가 없으니 천상 발 기차를 타는 수밖엔. 열차마저 뜸한 경의선 철로를 따라 걷는다. 사방은 일렁이는 황금물결이고, 너른 들엔 바지런한 농부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한나절도 더 걸어 만난 신촌역. 연한 파랑의 나지막한 집이 그렇게도 반갑고 따스하기만 했던, 그해 늦가을 촉감이 여전히 생생하다.
동북아시아 철도전쟁
러시아는 극동 진출 교두보로 일찍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를 구상한다. 1887년 노선측량을 마치고, 프랑스 도움을 받아 마침내 1891∼1892년 착공에 들어간다. TSR은 특히 영국과 일본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온다. 만주와 한반도가 이들 사이 다툼의 중심으로 부상함은 물론, 1902년 체결된 영·일 동맹이 구상되어 진 직접적 계기다.
러시아 주도로 삼국간섭이 관철된 후, 1896년 러시아-청나라가 밀약을 맺는다. 대가로 러시아는 동청철도(東淸鐵道, 치타∼하얼빈∼블라디보스토크) 부설권을 얻는다. 아울러 1898년 3월엔 동청철도 지선인 남만주철도(하얼빈∼선양∼대련)마저 얻게 된다. 그러자 영국과 일본이 다급해진다.
일본은 그해 4월 러시아와 '니시·로젠협정'을 맺어 만주에서 러시아 권리를 인정하고 한반도에서 자국 이권을 챙기는, 즉 일시적 후퇴전략을 꺼내 든다. 이 협정을 통해 경부선 철도 부설권은 확실하게 일본 권리로 굳어진다. 9월에 마침내 경부선이 일본 손아귀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