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1984)일제가 조성한 조차장 기능이 아직 살아있는 1984년 용산역 모습. 겨울 한강은 얼어있고, 공사 중인 63빌딩 모습이 보임.
서울역사 아카이브
용산역이 제 모습을 갖추자 기지 공사를 서두른다. 조선을 지배하려는 통감부의 무력 기반 구축이다. 사령부(1906)를 비롯해 야전 부대 등 제반 군사시설과 아방궁 같은 조선총독관저(1909)가 들어선다. 필동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가 이전(1908)해 오고, 사격장 및 제반 부속시설을 건설(1913.11)함으로써 1차 조성이 완료된다. 총면적 3.9㎢(118만 평)다.
2차 조성
일제는 러일전쟁 승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늘 경계해 왔다.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완성(1916)되자 한반도에서 러시아를 경계할 2개 사단 상시주둔군 편제를 준비한다. 일본 육군은 본국 부대와 1∼2년마다 교대해야 하는'한국주차군'체계를 탐탁하지 않게 여긴다.
1차 세계대전 발발(1914)로 세계적 경제 위기에 일본도 예외가 아니어서, 긴축재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재정 소요를 유발하는 한반도 상시주둔군을 일본 정부가 반대하자, 육군은 갖은 방법으로 정부에 저항한다. 이에 일본 의회는 부득불 2개 사단 상시주둔군체계를 승인(1915)한다.
이를 '조선군'이라 부르며 편성을 시작(1916.04)한다. 도중에 3·1 운동이 일어나, 조선군은 물론 본토 병력까지 동원해 만세운동을 진압한다. 용산에 주둔하는 제20사단은 5년 후 편성을 완료(1921.04)한다.
제19사단은 3년 후 편제(1919.02)하여 함경도 나남에 사단 본부를 설치 이전(1919.04)한다. 러시아를 염두에 둔 전진 배치로 호시탐탐 대륙침략을 노리며, 이들에 의해 한·만 지역 수많은 독립군이 타격을 입는다. 하도 악랄하고 사나워 '호병단(虎兵團)'이란 칭호가 붙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