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고흥에서 보낸 외할머니의 김장 김치
최원석
"오늘 김장했다. 아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시내 나가는 길에 택배로 부칠게. 내일 아마 도착할 거야. 맛있게 먹어."
"어, 외삼촌.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못 갔는데 번번이 챙겨주시고... 할머니께는 제가 따로 감사 인사 넣을게요."
외할머니께서 외가 가족들과 김장을 했나 보다. 이 추운데 김장하신다고 고생하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의 김치를 보며 일전에 김장을 함께 하던 때가 기억이 났다.
나는 태어나 줄곧 외할머니의 김치를 먹어왔다. 그래서 어릴 적에 김치는 원래 외할머니께서 주시는 것인지 알았다. 그만큼 할머니의 김장을 받아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어머니 오시기 전에
지금 이 시기 내 월급도 이렇지만 그 시절의 용돈은 빛의 속도로 지갑을 스쳐갔다. 사고 싶은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그렇게 용돈이 모자라 고민하다가 수시 합격한 그해 겨울 방학에 결국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바로 친구들과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세 명의 친구들은 서너 달을 모은 용돈을 우리의 첫 사업인 이 군고구마 판매에 모두 투자했다. 물론 내 용돈도 군고구마 통의 잉걸(불이 핀 숯덩이)처럼 모조리 하얗게 불태워졌다.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우리의 군고구마는 타버리기 일쑤였다. 적당히 잉걸들을 넣고 불 조절을 해야 하는데 경험이 없는 초보 셋이 이를 잘 해내기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고구마를 잘 구워야 팔기라도 하지, 처음 일주일은 타버린 고구마가 아까워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머니한테 들키면 혼이 나고 당연히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될 테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퇴근하고 오시기 전에 먼저 먹어 치우는 완전 범죄를 해야 했다.
원래 이렇게 집안에서 나쁜 짓을 할 때면 동생의 참여가 필수다. 동생과 나는 군고구마를 함께 먹었다. 처음에는 먹을 만(?)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니 어머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 고구마들을 다 먹어 치우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고구마를 먹기 힘들던 순간 냉장고에 있던 김치가 눈에 들어왔다. 동생에게 김치랑 같이 먹어볼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