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히려 최첨단 가족>
책소유
위 내용은 에세이 <오히려 최첨단 가족>을 쓴 박혜윤 작가의 이야기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땐, '최첨단'이라는 표현이 일종의 반어법이라고 생각했다. 와이파이가 잠깐만 끊겨도 손발이 묶인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는 이 시대에, 다소 느리고 불편한 생활 방식을 구사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최첨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아무래도 영 어색한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 가족을 뜯어보니, 실로 그랬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였다. 박혜윤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소비의 형태나 독특한 생활 방식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이렇게 산다'고 말할 뿐, 독자들에게 이런 형태의 삶이 옳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보다 집중하는 건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가족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 사이엔 '능력 있는 배우자, 희생적인 부모, 은혜에 보답하는 자녀'가 없다. 누구든 가족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은 한 명의 개인으로 존재할 뿐이다. 가사노동은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게 나눠서 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무를 짊어지게 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당연히 부모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거나, 자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다. 또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한다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서로를 책망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다.
다만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해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지기만 하면 된다. 물론 늘 이 같은 원칙이 지켜지는 건 아니다. 여느 가족들이 그러하듯 이들도 '나 빼놓고 초밥을 다 먹었다'고 삐지고, 아끼는 물건을 줬다 뺐었다고 자매끼리 투닥거리기도 한다. 때론 서로의 가치관이 맞지 않아 부딪히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다툼과 갈등을 해결할 때도 이들은 조금 다른 길을 택한다.
"엄마, 우리 싸울 거야!"
내가 달려가는 동안, 아이들이 서로를 노려보면서 기다리고 있다. 규칙과 틀로서의 싸움판이 잘 형성된 것이다. ... 부모 입장에서 보면 언니는 참 쌀쌀맞고 못돼 보이고, 동생은 왜 가만히 있는 언니를 먼저 건드리나 답답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때 부모가 아니라 스포츠 중계자가 된다. 주로 전략을 설명한다. (p.100)
예를 들어, 박혜윤 작가는 딸들이 싸우려고 할 때 하던 일을 멈추고 그 현장으로 간다. 그가 하는 건 싸움을 말리는 일이 아니다. 싸움의 '중계자' 역할을 자처한다는 그는, 싸우면서도 다치지 않기 위한 안전수칙을 설명하고, 룰을 규정하고, 각자의 '싸움 전략'을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또한 싸움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엄마를 찾는단다. 중계자가 있어야 '제대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작가가 자매의 싸움에 적극적인 관전꾼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다툼이 그저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자녀의 싸움이 '관계를 쌓아가는 연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투면서 타인과 나의 차이점을 파악하고,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싸움을 복기하며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도 자녀의 특성과 성향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익숙한 가사노동과 육아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가족 문법'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런 엄마와 가족의 등장이 낯설면서도 반가운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은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