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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서 동시적으로 독립선언 준비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11] 한국 유학생들은 국제정세를 자주독립의 기회로 받아들여

등록 2021.12.30 15:35수정 2021.12.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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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선언서 만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 독립군의 궐기를 촉구하고 있다. ⓒ 독립기념관

 
재일본 한국유학생들은 1918년 12월 15일자 <저팬 에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zer)>가 '한국인, 독립 주장'이란 제하에 재미 한국인들이 독립운동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하였다고 보도한 기사를 관심 있게 보았다.

또 12월 18일자의 '약소민족들 발언권 인정 요구'라는 기사에서 뉴욕에서 열린 세계 약소민족동맹회의 2차 연례총회가 파리강화회의 및 국제연맹에서 약소민족의 발언권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 한국 대표가 이에 포함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팬 어드버타이저>는 고베에서 영국인이 발행하는 영자지여서 일본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이런 기사를 게재할 수 있었다. 한국 유학생들은 이같은 국제정세를 자주독립을 이룰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1917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국제정세의 변화, 길림에서 망명 지사들의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그리고 상하이에서 동제사와 신한혁명당 조직 등 독립지사들의 소식을 접한 재일 한국 유학생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제1차 대전이 종결되면서 미국 대통령 윌슨은 자신의 특사 찰스 크레인(Charles Crane)을 중국에 파견하여 종전 후의 강화회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중국도 대표를 파견하도록 권고케 하였다. 1918년 11월 크레인이 상하이에 도착하자 중국 정부는 환영회를 개최하였다. 신한청년당 대표 여운형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크레인은 "지금 파리에서 개최되고 있는 세계평화회의는 각국 모두 중대한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그 영향력도 또한 큰 것이다. (중략) 피압박 민족에 대해서는 그 해방을 강조함에 따라 피압박민족에게 있어서는 그 해방을 도모하는데 최적의 기회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대표를 파견해 피압박 상황을 말하고 그 해방을 도모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여운형은 강연을 듣고, 그의 숙소를 방문하여 한민족의 식민지 사정을 설명하고 한국민족 대표의 파견도 가능할 것인지의 여부를 물었다. 크레인으로부터 미국정부의 의사는 알 수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지원하겠다는 응답을 얻었다. 


여운형은 동지들과 상의 끝에 파리에 파견할 대표로 중국 텐진에 머물고 있는, 영어에 능숙한 김규식을 입당시킴과 동시에 이사장에 추대하여 신한청년당의 대표이며 한국대표로 파견키로 하고, 경비는 여러 채널을 통해 마련하였다. 장덕수는 부산 백산상회 안희재로부터 2천 원, 김철은 손병희를 통해 천도교에서 3만 원, 김규식이 1천 원을 내놓는 등 모두 10만 원의 활동자금이 마련되어서 김규식의 파리행이 이루어졌다. 

김규식은 1919년 2월 1일 프랑스 우편선 편으로 상하이를 출발하여 3월 13일 파리에 도착, 시내의 불라베라는 시인 부부의 집에 사무실을 차리고 타이피스트와 통역을 구하여 '한국공보관'을 설치하는 등 즉각 활동에 들어갔다.

국내에서는 천도교가 손병희를 중심으로 하여 오세창ㆍ권동진ㆍ최린ㆍ이종일 등 핵심측근들이 독립선언을 위한 제반 준비를 서둘렀다. 타종교 지도자와 각계 인사들의 참여를 위해 1차로 선정한 대상은 윤용구ㆍ박영효ㆍ한규설ㆍ윤치호 등이었다. 

윤용구는 구한국 대신으로 병탄초에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나 품성이 고결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박영효는 고종의 부마로서 개화운동의 선구자였다. 그 역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지만 작위자를 참여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아 선정하였다. 한규설은 을사늑약 체결 당시 참정대신으로 이를 반대한 인물이고, 윤치호는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고 특히 미국인들 사이에 신임이 두터웠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하나같이 몸을 사리고 참여를 거부하였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박동완 #민족대표_33인 #박동완평전 #근곡_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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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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