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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결, 국제정세 포착하고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10] 국제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등록 2021.12.29 15:43수정 2021.12.2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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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동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지어진 배재학당 동관. 지금은 배재역사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 이영천

 
박동완은 <기독신보>에서 신문제작에 혼신의 노력을 하면서 정동제일교회의 신도가 되고 기독교청년회(YMCA)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배재학당은 1903년 10월 27일 한국 최초의 기독교청년회가 설립되어서 그는 재학시절에 가입했다.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기독교인이 되어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문이 직업이 되어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았으며 YMCA 활동 역시 그의 성격대로 열정적이었다. 20~30대 중반까지 그에게 기독교는 삶의 근간이고 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박동완이 아직 연소한 나이에 민족대표 33인 그것도 기독교 대표로 선정되는 데는 앞서 소개한대로 <기독신보> 등을 통한 각종 언론활동으로 지명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YMCA 운동에서 함께한 인사들과의 관계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33인 중 기독교인은 16명이고 그 중 9명이 YMCA 관계 인사였다.

16명의 기독교인의 구성은 장로교인 7명, 감리교인 9명의 비례로 되어 있다. 그중에 YMCA 관계 인사는 9명이다. 즉 정춘수ㆍ최성모ㆍ오화영ㆍ박희도ㆍ박동완ㆍ이필주ㆍ양전백ㆍ이승훈 등 9명이다. 이 9명의 관계 인사들을 다시 분석하면, 박희도는 그 당시 YMCA 회우부 간사인 동시에 학생 책임자였으며, 이필주는 본래 구한국 정부 때 군인으로서 초창기 YMCA 체육부 간사였으며, 오화영은 YMCA이사 종교부 위원장이었으며, 정춘수ㆍ최성모 양 씨는 YMCA이사 종교부 위원장이었으며, 정춘수ㆍ최성모 양 씨는 YMCA이사 위원을 거쳐 일요 강화ㆍ학생 하령회의 명강사였으며, 이갑성ㆍ박동완 양씨도 YMCA에 무시로 드나드는 열성 회원 또는 위원이었으며, 양전백은 선천신성학교 창설자로서 그 학교 학생 기독교청년회의 창시자 특히 전국 학생 하령회의 명강사였으며, 이승훈 역시 오산학교 창설자로서 그 학교 학생 기독교청년회의 창시자이며, 특히 그 학교를 창설할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서울YMCA의 박승봉, 이상재와는 오래 전부터 동지 관계에 있었다. (주석 1)

그가 <기독신보>를 비롯 관련 매체에 쓴 글은 실의와 절망에 빠진 기독교인들에 희망을 주었으며 따르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차츰 그의 명성이 알려졌다. 교계의 지도자들 중에는 체제에 순응하여 구지레한 처신을 하는 인물도 생겨났다. 

이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해외에서도 몇 갈래로 독립전선이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몇 단계 과정을 거쳐 기독교는 천도교와 함께 독립선언에 참여케 되었다. 불교측에서도 두 분이 동참함으로써 범종교적인 연대가 이루어졌다. 국치 이래 최초의 초교파적인 항일독립선언을 종교지도자들이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1914년 7월 28일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에 종전되면서 전승국과 패전국 사이에 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일본은 중국에 있어 이권 확대를 노리고 영일동맹을 내세워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중국 산동성의 독일의 이권을 물려받고 남양제도의 위임통치령을 얻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1917년 10월 혁명으로 레닌을 수반으로 하는 소비에트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소비에트정부는 지주의 소유지를 국유화하고 은행ㆍ산업의 노동자 관리에 착수했으며 독일과의 단독강화에 의해 평화체제를 갖추었다. 러시아 신정부는 권내의 다민족을 포용한 채로 자결권을 승인하고, 민족자결 원칙을 제시하면서 식민지 국가의 민족해방 투쟁을 지원한다고 발표하였다.

미국 대통령 윌슨은 1918년 1월 의회에 <14개조 평화원칙>을 공표했다. 그 내용은 ① 강화조약의 공개와 비밀외교의 폐지 ② 공해(公海)의 자유 ③ 공정한 국제통상의 확립 ④ 군비축소 ⑤ 식민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 ⑥ 프로이센으로부터의 철군과 러시아의 정치변화에 대한 불간섭 ⑦ 벨기에의 주권회복 ⑧ 알자스 로렌의 프랑스 반환 ⑨ 이탈리아 국경의 민족문제 자결 ⑩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내의 여러 민족의 자결 ⑪ 발칸제국의 민족적 독립보장 ⑫ 터키제국 지배하의 여러 민족의 자치 ⑬ 폴란드의 재건 ⑭ 국제연맹의 창설 등이다. 

각 민족은 그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외부로부터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민족자결주의는 19세기 내셔널리즘의 고양과 함께 약소민족의 자주독립사상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제1차대전 결과 독일ㆍ터키ㆍ오스트리아 제국이 붕괴되고, 그 판도에 있었던 종속민족들의 처리문제가 시급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윌슨의 '14개조 원칙'은 이같은 상황에서 제기되었다.


주석
1> 전택부, <한국 기독교청년회운동사>, 327~328쪽, 범우사, 1994.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박동완 #민족대표_33인 #박동완평전 #근곡_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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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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