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시설, 절대로 막지 마세요

[소방으로 通하다] 미국 소방검사 매뉴얼

등록 2022.01.08 13:53수정 2022.01.0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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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을 마친 건물의 넓고 쾌적했던 공간들은 사람들의 입주가 시작되면 금세 많은 물건들로 채워진다. 사무실 공간이 가득 차면 곧바로 복도나 계단 아래에 물건이 쌓이기 시작한다. 빈 공간이라면 어디든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캐비닛, 자전거, 복사기, 의자, 청소용품, 박스, 생수통 등이 빈 공간을 메운다.   
 

다양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는 중학교 휴게실 ⓒ 이건

 
하지만 한 건물의 공간배치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안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화재나 비상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무분별하게 놓인 물건들은 신속한 대피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물건 자체가 장애물로 바뀌어 결국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쇼핑몰에서 진열된 옷들이 비상구 앞을 가로막고 있다. ⓒ 이건

 

비상시 대피공간인 계단 아래에 캐비닛 등 여러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 ⓒ 이건

 

한 기숙사 출입문 입구에 자전거와 전동 스쿠터가 비상구를 가로막고 있다. ⓒ 이건


한편 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 등 화재진압을 위해 사용되는 소화설비를 가로막는 행위도 금지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소화전 옆 주차행위다. 유사시 소방대원들이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소화전 옆 주차는 위반 시 과태료 부과대상이다. 미국에서는 약 100달러 정도의 벌금이 부과된다.    
 

차량 한 대가 소화전 옆에 주차되어 있다. ⓒ 이건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와 주차금지 라바콘이 소화전 옆에 놓여있다. ⓒ 이건


특히 스프링클러 시스템의 경우 화재를 탐지해서 진압하고 건물 이용자가 대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미국방화협회(NFPA)' 13번 기준에서는 스프링클러 헤드 18인치(45cm) 이내에는 물건을 적재하지 말라고 명시해 놓았다.

화재 시 시스템이 작동할 경우 물이 '우산 패턴(Umbrella Pattern)'으로 방출되어야 하는데 장애물이 스프링클러 헤드 가까이에 놓여 있으면 살수반경이나 패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프링클러 시스템 앞에 생수통들이 놓여 있다. ⓒ 이건


한편 위험물을 보관하는 캐비닛이 비상구나 출입문 근처에 놓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대피공간에 위험성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험물 보관 캐비닛은 비상통로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통풍이 잘 되는 독립된 공간에 비치하면 좋다. 

각종 화재감지기나 경보벨을 변경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간혹 경보벨이 지저분해 임의로 페인트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도색하는 과정에서 페인트가 벨 내부로 흘러들어가 작동 시 내야 하는 소리의 크기, 즉 데시벨을 떨어뜨려 조기경보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화재경보 시 작동해야 하는 경보벨이 건물 사용자에 의해 임의로 도색되어 있다. ⓒ 이건

 
아울러 소방차 전용 주차 공간에 차를 주차하는 행위도, 화재 시 대피요령 등이 담긴 안내문 위에 메뉴판 등을 겹쳐서 걸어 놓는 행위도 조심해야 한다. 
 

식당 내부 현수막이 비상시 대피요령이 적힌 안내문 위에 부착되어 있다. ⓒ 이건


소방시설은 유사시 모든 사람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아주 중요한 장치다. 불필요한 물건들이 소방시설 주변에 적재되거나 방치된다면 결론적으로 그 건물의 리스크를 가중시키게 된다. 

만약 어떤 것이 소방시설인지 잘 모르겠다면 빨간색으로 색칠되어 있는 물품 주변에는 아무것도 놓지 않도록 하자. 보통 소방 관련 시설들이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이건 소방검열관 #미국소방 #소방검사 #화재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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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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