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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 무렵이었다. 과외 수업을 하러 갔는데 어머님이 난데없이 자그마한 쇼핑백을 하나 내미셨다.
"선생님, 이거 선물 하나 준비했어요."
"아니예요. 괜찮아요."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깜짝 놀라며 사양을 했다. 원래는 넙죽 잘 받는 편인데 최근에는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어서다.
"별로 비싼 건 아니니까 받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수업 잘 부탁드려요."
세상 쿨하게 주시는 선물과 내년에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이 더 감사했다. 아이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열어보니 화장품 하나가 들어있었다. 이렇게 직접 마주하여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일이 오래된 일인 것 같다.
요즘에는 선물할 일이 있어도 기프트콘을 보내는 일이 많다. 직접 선물을 고르는 수고도 덜어주고 상대편에게 보내기도 쉬우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방법을 선택한다. 이렇게 보내는 선물은 대부분 커피와 케이크, 치킨 등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니 고르기도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핸드폰으로 전해진 기프트콘을 받고 보면 감사한 마음도 들지만 사람 사이에 오가는 애틋한 정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핸드폰 앱을 열어서 추천하는 선물을 고르고 보내기는 참 간편하고 신속한 선물 보내기가 틀림없다.
바쁜 세상에 상점에 들르고 선물을 골라 포장하고 카드까지 적어넣는 수고스러움이 덜어진다. 받는 마음이 고맙기는 하나 2%의 정성이 부족한 느낌이랄까?
가끔씩 가르치는 학생 생일이거나 성적이 올라서 칭찬해 줄 일이 생기거나 할 때가 있다. 고등학생들도 커피 쿠폰을 사용하니 커피점에 들러 적립 카드를 하나 산다. 카드만 주기에는 머쓱하니 작은 카드도 하나 사서 정성스럽게 적어본다.
"생일 축하한다. 항상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더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해."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해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다.
고액의 선물은 서로 부담... 3만 원이 적당해
몇 해 전에는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2015년에 김영란법이라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여 공표됐다.
2000년대 초반에는 학부모님들이 선생님들에게 다소 과한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얼마를 어떻게 모으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학년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꽤 고급스러운 음식을 대접받곤 했다.
담임을 맡았던 해에는 반 학생의 어머니가 나와 체육 선생님께 따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셔서 극구 사양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다분히 아이에게 특별한 선처를 바라는 의도를 가지고 제안하시는 것 같아서였다.
김영란법이 공표된 이후로는 3만원 이상의 식사, 다과, 선물 등을 제공받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학교에 상담을 오시는 학부모님들이 음료수나 간식 등을 가지고 오시는 일이 없어졌다. 선생님이나 학부모님들이나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김영란법의 내용을 보니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사비를 모아 선물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어느 해 담임을 맡았을 때 그 반의 구성원들이 매우 독특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문제를 일으켜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매일 밤 해결이 안 되는 반 아이들 문제로 고민을 하다보니 뇌가 가동을 멈추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사다난한 걱정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가 아침 일찍 출근을 하자니 좀비와 같은 상태였다. 아,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수면제를 처방받으러 정신과에 가야 할까, 하는 진지한 고민이 들 정도였다.
그럭저럭 신학기를 버텨서 스승의날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교실에 모여 자기들끼리 계획하느라 분주하고 나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준비가 끝나고 반장 아이의 손에 이끌려 가보니 어두컴컴한 교실 한가운데 장미 꽃잎이 뿌려져 있고 케이크와 반 아이들이 한 장씩 쓴 편지 사십여 장, 선물이 있었다. 분위기도 그윽하고 하여 반 아이들이 부르는 스승의 은혜를 듣는 동안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이들도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크게 감동 받은 내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그때 받은 선물은 샤넬 립스틱이었는데 반 아이들이 모두 몇 천원씩을 거두면 살 수 있었으리라. 립스틱을 꺼내어 쓸 때마다 그날의 감동이 기억나곤 했다. 내 돈 주고는 직접 살 일이 없는 샤넬 립스틱이라니 이 무슨 횡재인가.
명절이 다가오고 김영란법상 선물의 상한선이 20만 원으로 올라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올라온다. 역시 선물은 삼만 원 정도가 적당선이고 서로에게 부담이 없는 금액인가 보다.
선물보다는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닌가 싶다. 정성스럽게 쓴 몇 줄의 감사 카드나 편지가 선물보다 더 오래 기억되고 마음에 위로를 줄 수 있다. 물질이 부족한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고액의 선물은 제공자나 수혜자나 서로에게 부담을 줄 뿐이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나 못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선물을 주고 받았으면 싶다. 감사와 정성을 담은 소박한 선물과 그에 담긴 따뜻한 마음을.
화장품 선물을 주셨던 어머니의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을 하였다. 수업을 하고 있는데 졸업 선물로 치킨을 사달라고 한다. 그래, 선뜻 치킨 세트 쿠폰을 아이 편에 보내주었다. 정성을 담은 카드는 쓰지 못했지만 원하는 선물을 받은 아이는 눈빛을 반짝이며 공부에 매진했다.
아차, 다음에는 격려의 카드도 있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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