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랑가(Mataranka)는 작은 동네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다.
이강진
황량한 들판에 야영장 하나 덩그러니 있는 테이블랜드(Tableland)에서 두 번째 아침을 맞는다. 저수지 쪽을 쳐다보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새가 떼를 지어 하늘에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광경이다. 그러나 오늘은 떠나는 날이다. 새들의 공연을 즐길 여유가 없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조금 바쁘게 하루를 시작한다.
다음 목적지는 레너 스프링(Renner Springs)에 있는 야영장으로 정했다. 무리하지 않고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거리를 보니 300km가 조금 넘는다. 지평선만 보이는 지루한 도로를 다시 운전한다. 작은 동산 하나 보이지 않는 광야다. 늦은 점심 시간이 되어 목적지 레너 스프링에 도착했다. 이곳도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야영장과 주유소만 있다. 장거리 여행객이 쉬었다 가는 곳이다.
일단 휘발유를 넣고 가게 안에 들어가니 뜻밖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동양 여성이 계산대에서 손님을 받고 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말레이시아에서 왔다고 한다. 주인은 아니고 점원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황량한 이곳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룻밤 지내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야영장 시설이 너무 빈약하다. 잔디가 없는 공터에는 흙먼지가 나부끼고 화장실 시설도 너무 빈약하다. 다음에 있는 쉴 곳을 찾아보니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엘리옷(Elliot)이라는 동네가 있다.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길을 떠난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운전하는데 잠이 쏟아진다. 식곤증이 왔나 보다. 두어 번 쉬어 가면서 힘겹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야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왔는데 보이지 않는다. 시골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크게 새로 지은 주유소에 들어가 야영장이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지나쳐 왔다고 한다.
왔던 길을 잠시 내려가니 글씨가 많이 지워진 오래된 야영장 간판이 보인다. 야영장 입구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 하룻밤 지내고 싶다고 했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청년이 지금은 손님을 받지 않고 있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하수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금 전에도 손님이 왔으나 돌려보냈다고 한다. 졸음을 참으며 오래 운전했다. 다음 동네까지 운전을 더 해야 한다. 맥이 빠진다.
나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나 보다. 점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손님을 받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작은 야영장이다. 손님은 나 혼자다. 썰렁하다. 화장실과 샤워실에는 거미줄이 그대로 있다. 그래도 하루 쉬었다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 혼자만의 야영장을 둘러본다. 수많은 새들이 나무 사이를 오가며 시끄럽다. 호주 오지에서 흔하게 보이는 새들이다. 캥거루 서너 마리도 근처를 오가며 시원한 저녁을 보내고 있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해가 떨어지면서 거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곳에도 유난히 밝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위에 사람이 없으니 쓸쓸함도 있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어 좋은 점도 있다.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성인들이 혼자만의 장소를 찾아 떠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룻밤 대충 지내고 아침 일찍 마타랑카(Mataranka)로 향한다. 인구는 2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동네다. 그러나 여행객에게 잘 알려진 동네다. 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에 들어서니 캐러밴이 많이 보인다. 여행객을 손짓하는 식당, 선물 가게 등도 많은 편이다. 동네 한복판 넓은 공원에는 원주민들이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까운 야영장을 찾았다. 입구에 커다란 개미집이 줄지어 여행객을 반기고 있는 야영장이다. 규모가 크다. 둘러보려면 한 참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붐빈다.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여행객이 더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