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를 통해 실체가 일부 규명돼 작은 모형으로 복원된 동궁과 월지.
경북매일 자료사진
<답사여행의 길잡이-경주>편은 여기에 아래와 같은 부연을 덧붙인다. 이를 통해 동궁과 월지 축조와 발굴 사이에는 1300여 년의 간극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동궁과 월지는 안압지(雁鴨池)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후대의 발굴 조사를 토대로 2011년 7월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천년의 궁궐인 반월성에서 동북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통일 시기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많은 부를 축적한 왕권은 극히 호화롭고 사치한 생활을 누리면서 크고 화려한 궁전을 갖추는데 각별한 관심을 두었다. 그리하여 통일 직후 674년에 동궁과 월지를 만들었으며, 679년에는 화려한 궁궐을 중수하고 여러 개의 대문이 있는 규모가 큰 동궁을 새로 건설하였다. 동궁을 비롯한 궁궐이 있던 안압지는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정원이다. 동궁과 월지와 주변의 건축지들은 당시 궁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새 동궁, 곧 임해전의 확실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다만 건물터의 초석만 발굴됐다."
멀고 먼 세월 저편 고대 왕국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것을 연구함으로써 당대의 모습을 해석해 알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들을 해낸 사람들의 수고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발굴'의 사전적 의미는 땅속이나 큰 덩치의 흙, 돌무더기 따위에 묻혀 있는 것을 찾아서 파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유적과 유물의 발굴'에는 이런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담겼다.
동궁과 월지 발굴에 참여했다는 건 시간을 초월해 과거의 신라 사람들과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 대화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했다는 게 아닐까? 그러한 노력이 천년왕국 신라의 실체를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했을 것이다.
1975년부터 시작된 발굴 통해 향후 연구 과제 찾아내
2020년 10월 발행된 <못 속에서 찾은 신라>는 1975년 동궁과 월지 발굴에 참여했던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어 주목받았다.
학술연구서의 하나로 이 책을 만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종훈은 다음과 같은 말로 동궁과 월지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75년은 신라 왕경과 통일신라 연구에 있어 획기로 남을만한 중요한 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연못지 발굴조사인 안압지(월지) 발굴조사가 시작된 해이기 때문이다. 안압지 발굴조사를 통해 우리는 통일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많은 양의 와전류, 목기류, 금속류 등의 출토 유물은 현재까지도 신라왕경 연구에 뺄 수 없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문서목간과 더불어 건축사 연구에 있어 한 획을 그을만한 신라시대 건축부재도 다양하게 출토돼 고고학뿐만 아니라 문헌·건축·보존 연구에 큰 영감을 가져다준 발굴조사이기도 했다."
<못 속에서 찾은 신라>엔 당시 발굴에 참여한 학자와 조사원들이 전해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다수 담겼다.
1975년 발굴되기 이전 동궁과 월지를 추억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비단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이 아니라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것들이다.
"준설 전에는 그냥 유적지로 생각했어요. 임해정이라고 일제강점기 때 지은 건물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고 그랬어요. 주변엔 상가가 몇 채 있었는데 관광객이 오면 먹을 것 등을 팔고 그랬죠. 아무 정비도 없이 그저 연못만 덩그러니 있었어요."
"발굴이 시작될 당시엔 고기들이 많이 나와서 연못에서 큰 고기들은 잡아 불국사의 못에 넣기도 했지요.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지만, 너무 큰 거는 무거워서 고기 한 마리를 지게에 짊어지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발굴 현장에 갔을 때는 붕어가 상당히 많아 안주로 만들어 약주도 한잔 했습니다."
동궁과 월지에서 살았던 신라인들과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기 전 풍경을 보여주는 가벼운 추억담은 본격적인 발굴조사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당연한 수순처럼 진지해진다.
책에 따르면 1975부터 1년 이상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나온 유물의 수량은 총 3만 3000여 점에 달한다. 유물들은 대부분 연못의 서쪽에 복원된 건물지를 중심으로 호안석축 내부 반경 6m 거리 내의 바닥토층에서 출토됐다고 한다.
월지에서는 기와, 벽돌, 건축부재, 불상, 용기, 숟가락, 배, 주사위, 금동제 가위, 목간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이 유물들은 통일신라의 건축, 불교미술, 생활상, 오락문화 등 통일신라 초창기 신라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지금도 역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