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회에서 제작한 웹툰 <있지만 없었던, 끝나지 않은 그림자들의 이야기> 집안일은 '노는 일', 돌봄은 무급이라는 인식을 바꿔내기 위해 여성들의 현실을 담아냈다.
부산여성회
어린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며 일터로 향했던 A씨.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지만 집과 회사가 멀어 오전 7시에 집에서 나와 밤 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A씨의 남편도 근무시간이 길어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기는 어려웠다.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에겐 분리불안이 생겼고, 돌봄을 전담해주시던 친정 부모님 또한 건강이 좋지 못한 상황이라 계속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일했기에 퇴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퇴사보다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줘서 1년 동안 하루에 5시간 근무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도 육아기근로시간단축제도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회사도 A씨도 잘 몰랐다고 했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급여도 줄었다.
무역 관련 영업을 하다 보니 거래처가 외국기업이었어요. 단축근무를 하며 2시쯤 퇴근을 했는데 그 시간이 제가 담당했던 나라의 출근 시간이라서 업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제가 했던 일은 자연스럽게 다른 직원들이 나눠 맡게 되었어요. 과장이라는 직급은 있었지만 근무시간이 줄어들게 되면서 중요한 업무나 결정에서 빠지게 되었어요. 선을 그어놓은 채 일을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줄어든 근무시간에 맞춰 일을 끝내기 위해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일했지만 회사 내에서 A씨의 자리는 점점 작아졌다. 사장의 무시나 업무배제가 느껴질 때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경력과 생계에 대한 부담으로 선뜻 퇴사를 선택하기도 어려웠다.
결코 선택이 아닌 선택
A씨는 2020년 3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1년동안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회사도 A씨의 빈자리에 대체인력을 채용해 메워나가고 있었다.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졌다.
육아휴직이 끝나기 전에 사장님께 연락이 왔어요. 코로나19로 인해 회사 일도 줄었는데, 조금 더 쉬면 안 되겠냐고 했어요. 사실 코로나19로 인해 복직을 머뭇거리고 있기도 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은 했지만 등교를 하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어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A씨는 육아휴직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회사에서 좋은 말로 사직을 권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오전 7시에 집을 나가서 밤 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삶의 반복. 아이가 아프거나, 재난·위기 상황에 학교는 멈춰도 직장은 멈출 수 없었기에 워킹맘에서 전업맘이 된 그는 잠시 멈춤하며 돌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대한 간절함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저출생 대책이라면서 영아수당이나 출산축하금, 첫만남꾸러미제도 등을 만들고 있다. 이런 저런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지만 정작 왜 이렇게 저출생이 심각할까 근본적으로 생각을 해봐야 한다. 모든 대책이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특히 엄마에게 짐 지우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여성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배려가 아닌 당연한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