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야마토의 건조 가상적국인 미국과의 함대결전에서 승리하고자 했던 일본 해군의 지도자들은 사상최대 규모의 거함거포 전함을 건조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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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증강의 족쇄가 사라진 현실 위에서, 일본 해군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거함거포 전함의 건조에 매진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거함거포 전함 야마토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진주만 공습 직후인 1941년 12월 16일에 취역한 전함 야마토는 일본 해군의 지도자들로부터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결과를 좌우할 최종병기로 믿어졌다.
언젠가는 벌어질 함대결전을 위해, 해군의 지도자들은 전함 야마토와 그 자매함 전함 무사시(戦艦武蔵)의 출격을 자제했다. 이들은 러일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역시 미 해군이 일본 근해로 진격해오는 과정에서 손실과 피로가 누적됐을 때 비로소 결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쓰시마 해전을 뛰어넘을 그 결전의 날에 다다를 때까지, 최종병기 야마토급 전함은 반드시 아껴둬야 했다.
일본 해군의 가장 강력한 전력으로 여겨지던 야마토와 무사시의 출전이 유예되면서, 그 공백은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하는 기동부대가 채우게 됐다. 진주만 공습에 투입된 일본의 항공모함들은 전함을 주축으로 한, 미 태평양 함대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마찬가지로, 전함을 주축으로 하던 영국 동양 함대 역시 일본 해군기의 공습을 받고 말레이 해전에서 허무하게 궤멸됐다.
함대결전을 위해 전함 야마토를 아끼던 일본 해군의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토록 집착하던 함대결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더 강한 거함거포 전함을 보유한 세력이 아니라, 더 강한 항공전력을 보유한 세력이 앞으로 바다를 지배하게 된다는 전쟁사적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미 해군이 항공전력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절치부심한 것과 대조적으로, 정작 그 전환을 직접 이뤄낸 일본 해군은 여전히 함대결전 사상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 대가는 파국이었다. 1944년 이후, 일본 해군 항공대는 더 이상 미 해군 항공대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뒤늦게 보충된 일본 해군의 항공전력은 제 역할을 해낼 수 없었다. 일본군의 방어선은 붕괴됐다(관련 기사:
"흥폐가 너희 어깨에 달렸다" 일본군 '노오력' 신화의 침몰).

▲미 해군기의 뇌격을 피해 회피기동하는 전함 야마토(시부얀 해전) 전함 야마토는 전쟁 내내 그 투입이 자제되었고, 일부 제한된 참전에서조차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거함거포 전함의 효용성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기점으로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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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야마토와 전함 무사시는 미군에게 유효타를 입힐 마지막 기회였던 1944년 10월의 레이테 만 해전에서조차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후 전함 무사시는 격침됐고, 전함 야마토는 이른바 '본토결전' 대비를 위해 본국에 정박하게 됐다. 최종병기로 여겨졌던 거함거포 전함들은 결국 세금만을 빨아들였을 뿐, 전쟁의 향방에 사실상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분명해졌고, 일본 해군이 고대하던 함대결전의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애물단지가 돼버린 전함 야마토가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한 채 그대로 종전을 맞았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으리라. 1945년 4월 1일,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이 시작되면서 전함 야마토는 건조 당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처참한 결말로 빨려 들어가게 됐다.
오키나와의 다음은 일본 본토가 될 것이었으므로, 일본 육해군의 지도자들은 오키나와 사수에 사활을 걸었다. 이들은 천호작전(天号作戦)을 발령하고 모든 가용 전력을 오키나와에 쏟아부을 것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도합 2천 여기의 가미카제 특공기가 오키나와의 바다로 내몰렸다.

▲1945년 시점의 전함 야마토를 묘사하는 미군측 자료 미군은 전함 야마토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자매함 무사시의 격침 사례를 참고해 작전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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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로 점철된 저항 속에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전함 야마토를 비롯한 일본 해군의 잔존 수상함대에 쏠리게 됐다. 항공전력들도 '특공'에 총투입되고 있는 마당에 수상전력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일본 해군의 내부에서 불붙게 됐다. 일본 연합함대 참모로서 종군했던 치하야 마사타가 전 중좌는 저서 <일본해군의 전략발상 : 패전 직후의 통한의 반성>(1982)에서 당시의 기류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설사 성공할 가망이 거의 없다 해도 조금이라도 전투력이 있는 것이라면 전장으로 투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야마토 등을 본토결전용으로 남겨놔 봤자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없지 않은가. 항공부대가 특별공격을 실시하고 있는데 수상부대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꽁무니를 빼는 것이 가당키나 하느냐는 목소리가 군령부 내에서 갑자기 커졌다. 그것은 이미, 작전이라기보다는 정신론에 지나지 않았다."(273p)
야마토를 비롯한 잔존 함대를 모두 투입해 봐야,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해군의 지도자들 모두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야마토 출격의 전략적 의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오키나와 사수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정신론에 경도돼 아무런 가망도 없는 죽음의 작전으로 야마토를 몰아세웠던 것이다. 야마토를 출격시킬 연료마저 부족하자, 심지어는 '어차피 생환 가능성이 낮으니 편도 연료만을 채우자'는 극단론까지 튀어나왔다.
믿었던 '최종병기'의 결말, 4000명 넘는 해군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의 공격을 받고 폭발하는 전함 야마토 불침전함으로 여겨졌던 전함 야마토는 미군기의 공습으로 허무하게 격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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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야마토는 왕복 연료를 확보하고서 출격할 수 있었지만, 이미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야마토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무의미한 '개죽음'에 몰린 야마토 승조원들 사이에서는 불안과 동요가 퍼졌다. 그리고, 그들은 목적지인 오키나와에 채 닿기도 전에 미 해군의 공습에 마주하게 됐다.
거함거포 전함이 항공전력 앞에 무력하다는 것은 일본 해군 스스로가 개전 초에 증명한 바 있다. 한때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최종병기로 믿어졌던 전함 야마토는 일방적으로 뇌격을 얻어맞으며 무력하게 수장됐다. 이날 야마토를 비롯해 경순양함 한 척, 구축함 4척이 격침됐고 4044명의 일본 해군 수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반면, 미 해군이 잃은 것은 13기의 함재기뿐이었다.
미국을 가상적국으로 삼았던 일본 해군의 야망은, 제국 일본의 전쟁은 야마토와 함께 그렇게 비참하게 침몰했다(관련 기사:
'가미카제'의 최후를 본 96세 일본 노인의 증언).
가상적국의 존재로 일본 해군은 스스로의 존재 당위를 설명하며 힘을 기를 수 있었고, 전함 야마토는 그 팽창의 가장 대표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야마토가 건조된 이유였던 미국과의 전쟁 역시 현실에서 벌어지게 됐다. 일본 해군의 지도자들은 야마토가 그들에게 승전을 안겨주리라 믿었지만, 말로는 파멸이었다.
가상적국의 설정, 이에 최적화된 무기체계의 확보와 운용이 마치 상식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과거 허망하게 수장된 야마토와 그 승조원들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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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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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규모 일본 전함은 왜 '자살작전' 내몰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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