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일요일 아침에 이미 '만차'... 소문난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걷다

등록 2022.04.02 14:41수정 2022.04.02 17:0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한탄강 주상절리 주상절리, 수평절리, 돌개구멍 등 기이한 지질 풍광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 장순심

 


남편의 항암치료가 끝났다. 드디어 봄이 봄으로 보인다. 노란 산수유나 하얀 매화꽃이 눈에 확 띄고, 벚나무의 핑크빛 봉오리와 목련의 도톰한 흰 봉오리가 눈에 들어왔다. 계절을 잊고 지난 시간이었는데 주변이 보이다니, 이제 조금 살 만해진 것 같다. 내친김에 남편과 나는 주말마다 새로운 볼거리를 찾고 있다. 비록 기름값이 고공행진이지만, 비행기로 떠나는 해외여행도 아니고 한두 시간 거리의 나들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나 싶어 한풀이하듯 다니는 중이다.

평소 같으면 이불 속에서 따뜻하고 노곤한 주말의 여유를 만끽할 시간이지만 평소보다 더 일찍 남편은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일 출근을 앞둔 사람처럼 정말 간단하게 밥을 먹고 나니 걷기에 편한 복장으로 외출을 준비하라고 했다. 차에 오르니 7시 30분. 장소를 묻지 않았고 느긋하게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았다.

일요일 아침, 외곽도로에는 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 제한속도에 맞춰 차를 몰았고 막히는 구간 없이 도착한 곳이 '철원 드르니 매표소', 시간은 오전 8시 55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 길이 남편이 선택한 오늘의 장소였다. 매표소 앞 넓은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9시부터 입장이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발권과 동시에 입장할 수 있었다.

조금만 늦으면 매표하는 줄이 길어지고 입장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길게는 30분도 넘게 기다린다고 남편은 말했다. 기다리지 않고 발권하는 것도, 바로 입장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란다. 그리고 그런 고급 정보를 미리 알고 있어서 서둘러 출발한 덕분이라고 했다. 주차장에 가득 찬 차를 보니 그도 그럴 것 같았다.

한탄강 주상절리 길은 54만 년 전에서부터 12만 년 전 사이의 화산 활동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2020년 11월에 개장한 국내 최장 잔도 길을 따라 한탄강의 화산 지형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54만 년 전의 흔적,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의미를 부여할 새도 없이 인파에 밀려 나무로 된 데크길과 쇠로 된 잔도를 걸으니 강 옆에 주상절리, 수평절리, 돌개구멍 등 기이한 지질 풍광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단단한 암석인 지층이 갑자기 충격을 받게 되어 갈라진 틈, 단층교에서는 화강암 절벽의 단층도 볼 수 있었다. 한탄강은 유난히 경사가 급하고 물의 흐름이 빨라 하천의 침식 지형을 볼 수 있다는데, 선돌교에서는 하천 활동으로 단단한 화강암 바위가 깎여 나간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돌개구멍교에서는 하천의 암반 바닥에 생긴 원통 모양의 구멍을, 수평절리교에서는 화강암이 가로로 깨진 수평절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표로 흘러나온 마그마가 빠르게 식어 생긴 암석인 현무암의 검은색을 현무암교에서는 만날 수 있었고, 이밖에도 돌단풍교, 쌍자라바위교, 주상절리교 등 13개의 다리와 3곳의 전망대에서 화산 지형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a

한탄강 주상절리 길에는 30-40m 높이에 잔도가 설치되어 있고, 인파를 따라 어느새 나도 걷고 있었다. ⓒ 장순심

 

'잔도'라고 하면 중국의 잔도 길을 떠올린다. 높은 암벽에 간신히 걸친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아찔한 풍경, 영상으로 보면서도 과연 걸을 수는 있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이곳 한탄강 주상절리 길에는 30~40m 높이에 잔도가 설치되어 있고, 인파를 따라 어느새 나도 걷고 있었다.

시설이 튼튼하리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막상 흔들리고 출렁거리는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고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한탄강을 따라 총연장 3.6km 폭 1.5m, 협곡을 따라 잔도 길이 이어졌는데 앞쪽의 주상절리와 한탄강이 만들어내는 경치는 충분히 훌륭했다. 중국 잔도 길이 별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드르니에서 출발해서 나무 데크와 쇠로 된 다리를 여러 개 지나니 드르니 스카이 전망대가 나왔다. 강 앞쪽의 주상절리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지만 실상은 바닥이 다 내려다보이는 유리 길을 걷는데만 집중했던 것 같다. 1.5km 지점을 통과하니, 반대쪽에서 출발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이때부터는 좁은 길을 양방향으로 사람들이 다녀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씩 줄지어 걸어야 했다. 좁은 통로이기 때문에 만약 쉬고 싶다면 중간 곳곳에 마련된 쉼터에서 쉬어야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편도 3.6km, 1시간 30분 정도의 걷기를 마치고 다른 출발점인 순담계곡 매표소에 도착하니 마침 셔틀버스가 출발 직전이라고 느긋하게 걸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안내하시는 분이 소리치고 있었다. 놓쳤다면 30분을 기다려야 했을 텐데, 이것도 행운이었다. 10분 정도 버스가 달려 출발했던 지점으로 데려다주었다.
 
a

한탄강 주상절리 수평절리교에서는 화강암이 가로로 깨진 수평절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장순심

 

10월부터 3월까지는 순담계곡에서 출발해서 강물 위로 걷는 '물윗길'로도 화산지형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물윗길은 순담계곡부터 태봉대교까지 물윗길로 2.4km, 육로로 5.6km로 약 8km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을 통해 한탄강의 또 다른 주상절리 명소인 송대소의 주상절리와 고석정의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한 때가 3월 27일. 3월이었지만 강물이 녹아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물윗길은 폐쇄되었다. 강물 위에 띄운 부교를 걸으며 강 양쪽으로 펼쳐진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것도 새로울  것 같았고 더 가까이에서 화산지형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폐쇄된 물윗길이 아쉬울 뿐이었다. 잔도 길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조망했으니 다음 기회에는 물윗길을 꼭 걸어보자고 생각했다.

한탄강은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연천을 거쳐 임진강과 합류하는 강이다. 한탄강의 지질은 북한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굳어지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내륙에서는 보기 힘든 화산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2020년 7월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고 한다.

한탄강 주상절리 길은 총 27.9㎞로 포천과의 경계인 영평천으로부터 한탄강이 임진강과 만나는 도감포까지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한탄강 지질공원 홈페이지) 오늘 우리가 걸은 부분은 한탄강 지질공원의 극히 일부였던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지만, 우리 땅의 소중한 유산을 잘 보존하고 그 가치를 지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즐거운 나들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 오후 두 시. 외출로는 분명 무겁지 않은 거리였는데, 남편의 건강이 받쳐주지 않는 것 같았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두 달,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조금만 무리해도 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3시간의 운전과 3.6km의 오르내리기를 반복한 걷기는 역시 무리였던 것 같다. 중간에 몇 번 깼다가도 이내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에서야 겨우 눈을 떴다. 수면도 전염일까? 옆에서 잠깐 지켜보던 나도 초저녁에 잠들어 다음 날에야 눈을 떴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 #잔도 #주말 나들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2. 2 "어버이날 오지 말라고 해야..." 삼중고 시달리는 농민
  3. 3 "김건희 특검하면, 반나절 만에 다 까발려질 것"
  4. 4 새벽 2시, 천막 휩싼 거센 물길... 이제 '거대야당'이 나서라
  5. 5 네이버, 결국 일본에 항복할 운명인가... "한국정부 정말 한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