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올해 5월에 구순을 맞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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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구순을 맞아 기획한 특별 선물
"직계가족이야 그렇다 치고 누가 숙제 내듯이 글을 써서 줄까?"
아버지의 구순 기념 가족문집을 제안했을 때 남동생이 보인 반응이었다. 언니, 여동생이 "좋은 생각이네"라고 적극 찬성하고 나서자 남동생도 의문을 내리고 마음을 바꾸었다.
아버지가 올해 5월에 구순을 맞으신다. 코로나19 이후로 지난 2년간은 공식적인 명절과 기념일조차도 가족모임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시기에 '아버지의 구순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는 가벼이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기념한다는 것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이니 각자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독립출판을 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생각이기도 했다.
4남매가 가족문집에 찬성하면 아버지 세대의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사위, 며느리, 그리고 아버지의 손주와 손주 사위들까지 3세대의 글을 모으면 작은 책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 책 출간을 문의하자 지방선거와 겹치니 가능한 원고를 빨리 달라고 했다.
형제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원고 마감일을 정했다. 막상 마감일이 다가와도 원고를 보내기로 한 형제 카톡방은 잠잠했다.
마중물이 될 누군가의 첫 글이 필요했다. 그 글은 누구라도 '나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을 들게 할 편안한 글이어야 했다. 나는 솔직한 글을 쓰는 남편에게 먼저 글 독촉을 했다. 마감일은 독촉하라고 있는 것이니 기꺼이 독촉의 총대를 멨다.
"막상 글을 쓰려니 어렵다"는 언니에게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니 함께 지내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25년째 영국에 살고 있어 이제는 한국말로 글 쓰는 것을 잊었다는 여동생에게는 우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모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 통화로 동생이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이 기억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데?"라는 내 말에 동생은 "얼마 전 신문에서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는 예전의 좋은 기억들을 추억하는 것이 좋다'는 글을 읽었는데 아버지와의 추억이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됐어"라고 했다. 며칠 후 여동생은 아버지와의 시간을 정리해서 '좋은 기억으로 안부를 전합니다'라는 글을 보내왔다.
나는 글이 올 때마다 형제 카톡방에 글을 공유했다. 글을 보며 글쓰기의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형제들은 서로의 글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불러냈다. 한 사람의 기억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불러냈고 서로의 글이 서로에게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글을 쓰는 것에 다소 회의적이었던 남동생은 3차례에 걸쳐 글을 보내왔다. 결혼 전 부모님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남동생의 긴 글은 원고량에 대한 내 걱정을 일시에 해소해 주었다. 한 번 기억의 빗장이 풀리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버지와의 지난 시간들이 현재의 시간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18명이 쓴 '우리 아버지 오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