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하지 못한 아빠도 잊지 않는 하나

[초보아빠 적응기⑫] 부모 자식간 신뢰의 기본은 ‘반응’

등록 2022.05.04 16:28수정 2022.05.0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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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호랑이 장난감과 한장 찰칵 ⓒ 김종수

 
어느덧 아들 녀석도 33개월에 접어들었다. 이것저것 호기심도 왕성하고 뭔가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놀랄 정도인지라 초보 아빠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신기하기만 하다. 더불어 나름대로 관심을 가져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좋은 아빠들이 워낙 많기에 '내가 지금 잘하고있는가?'라는 걱정이 들 때도 종종 있다.


육아가 싫어, 없는 약속도 만들어가면서 집에 들어가는 것을 피했던 일부 지인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내가 좀 낫지'싶다가도 엄마 이상으로 아이를 잘 돌보는 아빠를 보면 또 그것도 아니다. '겨우 이거 하면서 좋은 아빠 코스프레하고 있는 것은 아닌 건지…'라는 반성도 밀려온다. 여기에 대면 이렇고 저기에 비교하면 또 저런지라 요즘은 '나는 그냥 OO이 아빠다'라고만 여기고 살려고 한다. 어차피 우리 아들에게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빠이지 않은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육아를 하면서도 정말 피곤해하고 힘든 마음이 가득했던 초반에 비해 지금은 몸이 익숙해져서인지 그런 생각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가져왔던 습관처럼 눈뜨고 감는 순간까지 당연히 해야 하는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불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이에 대한 마음도 더욱 애틋해지고 그만큼 이 녀석도 나를 잘 따르고 있다. 서툰 아빠로서 아들과 애착관계가 잘 형성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여기에는 아내의 모습을 통해 보고 배운 이른바 '팁'도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아들을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아내와 나 역시 다른 어느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 다만 우리 부부의 양육 스타일은 서로 간 조금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내는 놀아줄 때마저도 최대한 뭐라도 하나 더 해주려고 신경 쓰는 편이고, 난 살짝 '방목(?)'하는 유형이다.

귀찮아서 그러냐고? 그것은 아니다. 그렇게 귀찮았으면 일하는 시간 외에 오로지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들이 태어나고 이제까지 단 한번도 밤시간에 개인적인 술자리를 가진다거나 다른 일을 만들어서 육아를 피해 본 적이 없다. 아들에 대해 옆에서 막 따라다니면서 챙겨주지는 않아도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항상 열어두고 있다.

아내의 최대 장점은 아이의 말과 행동에 대해 바로바로 반응을 해준다는 점이다. 초창기의 나는 이게 잘 안됐다.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귀찮아서 외면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부모 자식간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후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가 나에게 전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서만큼은 즉각즉각 반응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칭얼대고 울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뭔가 요구하는 게 있는데 잘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러한 부분에서 부모와 소통이 잘 안되면 흐르는 시간과 함께 쌓이고 쌓이면서 성격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처음에는 떼를 많이 썼다가도 뭔가를 요구할 때 그것이 잘 이뤄지면 횟수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구태여 떼를 쓰거나 울면서 행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인내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휴일에 아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내가 아이와 방에서 둘이 있을 때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방 안 가득 여러 가지 장난감을 세팅해주고 아들이 좋아하는 유튜브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으로 틀어준 다음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누워있을 때도 많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몸이 자주 피곤하고 나른하다. 주말에는 특히 그렇다. 아들이 노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잠깐씩 눈을 붙인다.

물론 제대로 잠을 자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눈과 귀는 열려있는지라 유튜브 광고 영상이 나오면 리모컨으로 확인 버튼을 눌러서 없애주고 실눈을 떠서 아들이 잘 놀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한다. 너무 조용해도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지며 아들 쪽을 쳐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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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야외에서 나무 조각 쌓기 놀이를 함께 했다. ⓒ 김종수

 
아들이 태어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알람 소리가 아무리 크게 울려도 전혀 듣지 못했다. 누가 직접 흔들어 깨우거나 정말 반복적으로 미친 듯이 자명종이 울려야 겨우 눈을 뜰 정도였다. 하지만 육아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이제는 조그만 기척에도 잠이 깰 때가 많다. 평생 어두운 잠귀로 살다가 아빠가 된 후 잠귀가 밝은 사람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꾸벅꾸벅 졸고 깨기를 반복하는 비몽사몽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지키는 것은 있다. 아내가 그렇듯 아들이 뭔가를 요구하면 바로바로 반응을 해준다는 것이다. '배고파', '쉬 마려워' 등 기본적인 부분부터 '공룡 만화 보고 싶어', '나 이것 퍼즐 맞춘 것 봐라' 등 모든 상황에 맞춰서 즉각 대답하고 움직여준다. 아무리 몸이 천근만근이라도 "아빠, 우리 칼 싸움할까?" 하면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아들과 서로 장난감 칼을 맞댄다. 방목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리액션, 반응 그런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것이 바로 선택적 방목?

이렇다 보니 아들은 둘만 있을 때 아빠가 조용히 눈을 감고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예전에는 '아빠, 일어나' 하고 옷을 잡아끌기도 했지만 이제는 가만히 놓아둔다. 필요해서 찾을 경우 아빠가 언제든지 반응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에서 나로 이어진 이런 모습은 아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아들 또한 엄마 아빠가 무엇인가를 말하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바로바로 대답하고 반응해준다. 적어도 우리 가족끼리는 '내가 무시받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아무도 안 하게 된다. 이런 게 선순환이고 가족 간 신뢰의 기초가 아닐 듯 싶다.

개월 수로는 33개월이지만 여름 출생인 관계로 아들의 나이는 4살이다. 자아가 본격적으로 생겨나는 시기인지라 떼도 늘고 고집도 강해지는 등 이른바 '미운 4살' 때문에 고생하는 부모들도 많다고 들었다. 다행히 아들 녀석은 4살이 되자 웃음도 더욱 많아지고 미운 모습보다는 예쁜 모습이 가득하다. 말도 또래에 비해 아주 잘하고 애교도 많은지라 놀이터에 가면 인기스타다. 3~4살 위 누나들이 특히 좋아한다.

육아에 있어서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초보 아빠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지금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비단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여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면 자존감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현재 우리 아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부모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기분 좋다. 아들, 언제 어디서든지 편하게 지내고 마음껏 뛰어놀아. 엄마 아빠의 눈과 귀는 항상 열려있으니까.
#반응 #육아일기 #초보아빠 적응기 #소통과 교감 #애착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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