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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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혼자서 슬쩍슬쩍 만든다. 엄마는 내가 카레를 만드는 줄도 모른다. 재료들을 모두 꺼내 씻고 다듬고 칼로 썰어 준비한다.
카레를 만들 때 우리 집만의 특별한 점은, 큰 통으로 사다 둔 샛노란 강황 가루는 추가하고 제주에서 왔다는 귤색 당근은 넣지 않는다는 것. 채소는 물로만 익히고 고기는 넣지 않는다. 캔 옥수수가 있으면 꼭 챙겨 넣는다.
강황 가루는 치매 예방에 좋다고 TV에 자주 나와 벌써 사뒀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손이 가지 않으니 카레를 만들 때 잊지 말고 넣어야 한다. 당근을 빼는 것은 엄마 나이가 돼야 알게 될, 요즘 들어 엄마를 불편하게 하는 바로 그것, 변비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장 활동이 원활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변비약 광고는 젊은 층이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뜨거운 싱어즈>의 김영옥 할머니와 '니들이 게 맛을 아냐?'던 신구 할아버지가 같이 나오는 이유가 다 있구나 싶다.
부지런한 엄마는 아침마다 몇 가지 채소를 갈아 먹는데도 화장실 가는 것이 생각보다 편하지는 않단다. 그래서 '익힌' 당근은 변비가 생길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생각나 카레에 넣지 않는다.
또 하나, 우리 집은 나 어릴 적부터 카레를 만들 땐 오로지 채소만 넣고 물로만 익혔다. 다른 집은 노란 카레와 어울리는 주황색 당근, 살짝 데쳐 초록이 선명한 브로콜리 그리고 감자, 양파 등을 돼지고기와 함께 기름에 볶아 만들던데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가 들어가 기름이 뜨는 게 싫다고. 그래서 채소만 들어간 카레를 항상 먹었다. 나이가 들어 밖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어 보니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들어 있어서 이렇게도 먹는구나 했다.
또 엄마는 다른 음식은 나보다 더 간간하게 드시는데 카레는 묽고 싱거운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한다. 여기에 사다 둔 캔 옥수수가 있으면 톡톡 터지는 식감이 좋으니 마지막에 꼭 넣어준다.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건 단맛과 짠맛이 적절하게 날 때다. 노란색 포장지에 든 카레는 짠맛이 강하니까 겨울엔 무조건 고구마를 넣지만, 지금은 역시 햇감자다. 대신 양파를 듬뿍 넣고 달콤한 캔 옥수수 알갱이도 넣어주면 단짠(달고 짠 맛)이 돼서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