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관아에서 벌어진 진풍경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고양, 파주를 거쳐 개성에 진입하다

등록 2022.05.20 13:53수정 2022.05.2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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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지난 번에는 1884년 8월 22일 북한산 요새 방문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부터 나의 눈에 비치고 나의 몸과 마음으로 직접 체험한 바를 털어 놓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38년 전 여름의 시공간으로 들어갑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북한산성 요새를 빠져 나와 남쪽 방향으로 약 3마일 정도 이동하여 어떤 산사로 들어갔습니다. 거기가 우리의 숙소였지요. 나는 호기심에 끌려 법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전면 가운데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희미한 향불 냄새가 감돌더군요. 그러한 정경에서 나는 동양의 한 종교가 소멸해 가는 모습을 느껴졌습니다.

객실에 여장을 푼 후 우리는 사찰식의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메뉴는 사찰식이었습니다. 고기는 없고, 쌀밥, 기름 바른 해조류, 절임 채소, 콩으로 만든 "장(chang)"이라고 하는 진한 액체 등이 모두 작은 상에 담겨 바닥에 놓였습니다. 나는 식사 후 곧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하루 동안 꼬박 25키로 미터를 걸었으니까요.

다음 날 동이 트자 다시 길을 나섰지요. 몇 마일이나 갔을까요. 절이 또 하나 나오더군요. 거기에서 변수와 무관은 나와 작별을 하고 발길을 한양으로 발길을 돌렸답니다. 그들이 떠나자 우리는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다랑이논이 나타났고 그 아래로는 시냇물이 콸콸 흐르며 언덕과 대지를 적시고 있었습니다. 벌판에는 콩, 옥수수, 깨, 상추, 목화, 완두콩, 붉은 고추 등의 작물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땅 전체가 산과 깊은 계곡으로 얼키고 설켜 한 몸을 이루고 있더군요.

시선이 닿은 곳 어디나 구릉이 솟아 올라 산으로 이어집니다. 황토를 드러낸 벌거숭이 민둥산이 보이는가 하면 화강암을 품고 있는 높은 산악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울퉁불퉁한 소나무가 우거진 숲에 화강암 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있더군요. 20킬로미터쯤 이동한 후 우리는 고양이라는 고을에 이르렀습니다. 초가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담장은 흙과 돌을 섞어 만들었고 도색은 하지 않은, 기울어지고 투박한 그런 집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고양을 지나 곧 파주라는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주막(chumak)이라고 하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마을 속으로 들어가니 작은 여관이 있었고 그곳에서 잠시 머물었습니다. 파주는 고양과 매우 흡사했지만 양지 바른 언덕 위에 자리잡은 멋진 마을이었습니다. 우리는 'Changdan'이라는 세 번째 마을을 지나 송도(개성)로 향하는 언덕으로 들어섰습니다. 오후 5시경이었지요.


송도는 수령governor이 주재하는 일등급 지방 도시였습니다. 마을로 향하는 연도에는 비석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비석은 머리에 조각된 지붕을 이고 있는 누각안에 세워져 있었는데 옛날 위인들의 공덕을 기리는 것이라 하더군요. 거길 지나고 나니 길 양쪽으로 인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길가의 노점상에서는 마포麻布,기름 먹인 종이, 돼지 고기, 소고기, 채소와 과일을 팔고 있더군요.

길 끝에 이르자 돌로 된 성곽에 "남대문(Great South Gate)"이 나오더군요. 우리는 그 문을 통과하여 곧바로 용문((youngmun) 즉 수령이 주재하는 관아로 들어섰지요. 가마에 앉아 널찍한 안 뜰로 들어서자 마자 한바탕 큰 소동이 일었답니다. 뜻밖에도 그곳에선 아무도 우리가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나의 가마꾼들이 관아의 하인 하나를 마구 패기 시작하는 거였어요. "대인 Tai-in(Great man)"을 모실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가마꾼은 그런 행동으로써 내게 충성심을 보이려는 거였지요. 나는 즉시 소란을 멈추게 한 후,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여관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객관의 문이 열리더니 이 곳 저곳에서 옷자락을 펄럭이며 부산을 떨더군요. 이내 방석이며, 등 등속이 객실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렇게 나는 마치 지체 매우 높은 벼슬아치처럼 응대를 받았지요.

좀 있자 고관 한 명이 나타나더니 백배 사죄를 하더군요. 수령님이 한양에 출타하시면서 자기에게 나를 잘 접대하라고 신신당부 하셨는데 이렇게 빨리 도착할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으며 내일 올 거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상을 하고 있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나는 "전혀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군中軍이라 불리는데 두 번째 높은 사람으로서 수령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50살이었고 검은 얼굴에 수염을 길렀습니다. 작고 예리한 눈은 잔인해 보였으며 음성은 깊었습니다. 그는 나를 "왕wang"이라 부르기도 하고 "대인"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내게 마치 코끼리 옆의 고양이처럼 처신하려 애를 쓰더군요.

한편 그는 나의 수행원 묵 Muk과 수일Suil에게는 "양반nyang pan"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러더니 아무래도 묵과 수일의 신분이 궁금했던지 다가가서 "당신은 누구요?"라고 무뚝뚝하게 묻더군요. 그러자 이 쪽에서 "전 양묵 등이옵니다. 나으리"라고 대답하였고 중군이 다시 "어디서 살며 직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더군요. 묵과 수일이 공손히 대답하자 중군은 자기 이름을 말해주면서 사는 곳은 어디인지 직위는 무엇인지를 알려주더군요.  

조금 있으니 비장Pijang이 나타나 인사를 하더군요. 60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습니다. 그와 중군은 나를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었다며 진지하게 사과를 하더군요. 물론 조선인 고유의 과장된 인사치레인 줄은 알았지만, 내겐 그들의 언행이 모두 진실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짧게 "천만의 말씀요(Chun mun malsum how "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중군은 저녁에 다시 찾아와서 내게 점심 식사는 어땠었는지 묻더군요. 이내 큰 저녁 밥상이 들어 왔습니다. 나는 배가 고프던 참이라 "밥(pap)"을 맛있게 먹었지요. 중군은 내가 밥을  잘 먹는 걸 보더니 감사해 하더군요. 나는 밥을 먹고 나서 관리들에게 나의 시계와 권총이며 사진, 거울 등속을 보여 주었답니다.

그들은 몹시 신기해 하면서 꼼꼼히 들여다 보더군요. 마치 새 장난감을 본 아이들 같았어요. 거울을 유난히 흥미로워 하더군요. 그걸 들여다 보며 그들은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고 자신의 수염을 잡아 당겨 보기도 하더군요. 엄청나게 신기하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조지 포크 #개성 #파주 #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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