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유해 발굴 지역에서 나온 유품들을 경찰 관계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6.25 전쟁에서는 군인만 희생된 것이 아니었다. 후방에서 벌어진 각종 전투에서 스러져간 경찰과 방위군 등도 있었고, 유격대원이나 근로 동원된 종군자들도 있었다. 유해 신원이 확인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경찰관은 모두 12명. 이들은 대부분 1950년 7월 호남지역 전투에서 전사했다.
개전 초기인 1950년 7월 광주를 점령한 북한군 6사단은 목포, 보성, 순천을 거쳐 하동으로 진출한다. 이 과정에서 해남, 무안 등 서남부지역 경찰병력 50명은 피탈된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삼학리 지역 진출하다가 적과의 교전으로 지서 일대에서 전원 전사한다. 당시 전황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고립되어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것이다.
현재까지 대전현충원 경찰관 묘역에 안장된 6.25전쟁 유해발굴 신원확인 경찰은 오종팔‧박방온‧김국양‧김계식‧손봉석‧장순일‧김남현‧박채운‧김일수‧황규봉‧이남의‧최영근 경사다.
군번 없이 참여해 전사, 대전현충원에 잠들다
방위군이 참여한 전투는 함양 거창지구 전투다. 미 제24사단과 경남지역에 편성된 민부대 등 대대단위 부대와 경찰, 청년 방위대 등이 경남의 안의, 거창, 함양 방면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4사단과 맞서 싸운 전투다.
미 34연대는 거창일대, 19연대는 안의·진주 축선, 한국군 민부대 등 4개 부대는 운봉·안의·함양 등에서 축차적인 방어를 실시한 지연전이다.
당시 한국군 부대는 대대 단위 독립부대로 김성은 중령의 해병대, 김병화 소령의 김부대, 오덕준 대령의 오부대, 기타 경찰 및 청년방위대 등이 있었고, 이를 통합해 민기식 대령이 지휘한다고 하여 '민부대'라고 했다. 이때 군번 없이 참여해 전사한 방위군들이 있었는데, 2007년에 5명의 유해가 발굴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밖에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돼 제주도에서 훈련 도중 군번 없이 순직한 김국진 민방위군과 설악산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김영인 유격대원, 피의 능선 전투에서 준군사적 조직인 노무단에서 군인들을 지원하다 전사한 김아귀 근로동원자 등도 모두 신원이 확인되어 대전현충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