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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 의도에 재판부 기피신청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27] 김지하의 양심선언을 통해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고

등록 2022.07.07 15:20수정 2022.07.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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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감된 후 가진 기자회견과 1975년 2월 동아일보에 게재한 옥중기 <고행...1974> 필화사건으로 출옥 한 달만에 재투옥된 김지하 시인이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공판을 받고 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감된 후 가진 기자회견과 1975년 2월 동아일보에 게재한 옥중기 <고행...1974> 필화사건으로 출옥 한 달만에 재투옥된 김지하 시인이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공판을 받고 있다. ⓒ 아트앤스터디

 
숙달된 중정 요원들의 조사와 고문이 거침없이 자행되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위해는 며칠씩 잠 안 재우는 고문이다.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발언을 얻어내거나 이른바 '각서'를 쓰게 한다. 양심수들의 본의와는 달리 작성된 조서의 날인이나 각서는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다. 

3차, 4차, 5차 조서로 거듭거듭되면서 이전 조서는 차례차례로 파기된다. 조금씩 조금씩 자기들의 주장을 내 대답을 통해 관철시키면서 끝없이 끝없이 손가락에 인주를 발라 조서에 지장을 찍는 과정이 일주일 동안 잠을 안 재우고 계속되었다. 

결국은 피로감의 절정에 이르러서 잠을 재워준다는 조건으로 '가톨릭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라는 그들의 주장에 반쯤 동의하는 형식으로 어물어물 취조가 끝났다. 

  잤다. 그리고 깼다.
  잤다. 그리고 깼다.
 (주석 4)

그에게 씌운 죄명은 반공법ㆍ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지 한 달만이다. 박세경ㆍ이돈명ㆍ이세종ㆍ조준희ㆍ홍성우ㆍ황인철 변호사가 변론을 맡았다. 당초 그를 기소할 때 최장 7년형인 반공법 4조 위반으로 이적표현물제작 예비죄로 기소했다가 갑자기 검사가 공소장 변경을 통해 사형까지 가능한 반공법 누범가중 조항을 추가했다. 그리고 단독사건 재판부에 배당되었던 것을, 3년 이상의 중형을 받을 합의부로 배당했다. 김지하를 죽이고자 하는 권력의 의도성이 보이는 조처였다. 때는 마침 남부 베트남이 적화되어 전국이 반공궐기 대회로 들끓고 있었다.

박정희의 '살의'가 담긴 기록이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74년 4월 5일 군포 야산에서 식목일을 기념, 오동나무를 심으면서 말했다. "민청학련 대학생 놈들은 보고를 들어보니 순 빨갱이들이야, 잡히기만 하면 모두 총살이야." 라고, 경기도지사와 기자들을 대경실색케 했다. 비록 대변인을 통해 "없었던 얘기로 해달라"는 보도관제가 따랐지만…. (주석 5)

박정희는 '대학생놈들'을 일컬었지만, 김지하는 이들을 '배후조종'한 원흉급이었다. 해서 반공법 적용 조항을 바꾸기까지 한 것이다.  

"김지하의 자필진술서"라고 하여 <김지하 반공법위반사건의 진상>이란 제목의 103쪽 짜리 책자를 문공부가 찍어 국내는 물론 6개 외국어로 번역하여 세계 각국에 배포했다. 서두에 "나는 공산주의자다"로 시작되는 이 괴책자와 관련 김지하는 뒷날 발표된 <양심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정보부에 끌려가서 나는 처음부터 내가 가톨릭에 침투한 공산주의자임을 시인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5~6일간 나는 그 틀에 끼어들어 적색 오징어포가 되기를 거부하며 버티었다.… 5~6일간 버티는 동안 극도로 정신적 시련과 육체적 피로를 겪어야 했고 내 체력은 한계에 도달, 의식마저 혼란상태에 빠졌다.… 6일 째에는 그들이 미리 작성해가지고 온 소위 자필 진술서 내용을 그들이 부르는 대로 낙서처럼 받아써 가지고 내던져버렸던 것이다. (주석 6)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김지하를 처형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변호인들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제기토록 했다. 이 경우 피의자가 직접 제기해야 함으로 양심적인 교도관 전병용을 통해 성사시켰다. 제2의 인혁당사건 처형과 같은 참사를 막는데 우선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이다. 

김지하의 양심선언을 통해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고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

"이 자필진술서의 진정성을 깨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여, 김지하 구명의 차원에서 준비를 합니다. 바깥에서 김지하 친구들이, 이렇게 숙의가 되다가 소위 김지하의 양심선언이란 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양심선언이라는 게 그 전해부터 가톨릭에서 시작되었는데, 지학순 주교도 양심선언을 했고요." (주석 7)


주석
4> 앞의 책, 395쪽.
5>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537~538쪽, 플리티쿠스, 2020.
6> <홍성우 증언>, 135쪽.
7> 앞의 책, 13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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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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