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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잡지 그걸 누가 봐?" 제가 자주 보는데요

[프롤로그] 사는 데 별 도움은 안 되는 '이상한 구경'에 대한 이야기

등록 2022.07.07 19:23수정 2022.07.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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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잡지나 이미 수명이 다 한 물건, 잊힌 사람들을 찾아 넋 놓고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궁금하고, 궁금해서 찾아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이상한 구경기'를 시작합니다.[편집자말]
"이건 꼭 봐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의 흥분된 눈빛을 보는 게 재밌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취향이 뭉게뭉게 퍼져나가기도 한다. "요즘 어떤 드라마·유튜브·영화가 재미있느냐"는 게 내 단골 질문이다. 대화의 맛은 티키타카. 보통은 나도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에 재밌어 하는지를 듣는 게 나의 큰 즐거움이다.

내가 찾아보고 즐기는 콘텐츠를 곧이곧대로 얘기하면 상대방은 대체로 의아해한다. 지금 내 취향의 절반 정도는 최대 30여 년 전에 핫했던 드라마와 잡지 등에 기대있다. '드라마와 잡지'보단 언제나 '최대 30여 년 전'이 대화의 화두가 된다.


"<질투>요? 너무 옛날 것 아닌가요?"

카카오톡 대화였다면 분명 ';;;;;;(땀을 표현한 이모티콘)'이 붙었을 것이다. 그 드라마를 서너 번 봤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내가 아무리 넷플릭스나 티빙, 라프텔(한국에서 개발한 개인화 추천 기반의 애니메이션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최신 콘텐츠를 본다고 강조해도 이미 상대방의 머릿속에 난 '복고 마니아' 같은 별명으로 저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누가 궁금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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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한 장면 ⓒ MBC


내가 드라마 <질투>(1992)나 <인어아가씨>(2002), 잡지 <라벨르>, <이매진>을 보고 품는 의문이나 포착하는 뭔가는 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생정보통' 스타일도 아니고, '위기탈출 넘버원' 쪽도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내가 발견한 이상한 순간들을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가령 이런 것들. 

<인어아가씨>에서 인물들은 왜 늘 백화점 식품관에서 장을 볼까? 시댁에 들어간 주인공은 대체 며칠이 지나야 한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을까?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나우누리'와 '천리안'에서는 왜 잡지를 만들었을까? 인터넷에서 상대방을 지칭하는 '님'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대부분 나의 공상에서 출발하는 의문들에 콘텐츠들은 답을 주기도 하고 회피하기도 한다. 원하는 답이 아닐지라도 그 과정은 나에겐 충분히 유머러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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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한 장면 ⓒ MBC

 
콘텐츠 속 이상한 순간이나 장면, 혹은 이상한 콘텐츠 그 자체는 발견에 노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구경하다 보면 의외로 쉽게 눈에 띌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몇 달 전 MBC <마지막 승부>(1994)를 정주행한 뒤, 드라마에 나왔던 배우의 이름이나 농구 관련 키워드를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검색했다.


다소, 아니 28년이나 늦었지만 드라마 방영 당시의 열기를 느끼고 싶었다. 연관된 기사를 읽다 광고 코너도 둘러본다. 지금과는 다른 타이포그래피와 사진 구도가 '근사하다'. 1960년대에 '농구의 왕'으로 불린 박신자씨의 존재 같은, 옛날 신문을 펼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도 알게 된다.

당대에는 흥행했을 요소가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 속에서 비가 오는데 화면 한 쪽으로만 비가 몰리는 장면이나, 주인공의 결혼 전날 골목에 울려 퍼지는 "함 사세요!" 소리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드(한국 드라마)'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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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하고 있는 잡지들 ⓒ 황소연


얼마 전엔 온라인 헌책방 한 곳을 '디깅(깊게 파고들어 찾는다는 뜻)'했다. 나는 주로 잡지 카테고리를 살피는데, 이 사이트에선 잡지가 세부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패션지, 사보, 요리전문지 등 잡지도 장르가 다양한데 그게 다 한데 뭉쳐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며칠에 걸쳐 그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몇천 권의 잡지를 훑었다.

성과는? "이건 내가 샀어야 하는데…" 싶은 책이 품절이기도 했지만, 다음과 같은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해외펜팔'을 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출간된 적 있다든가, 호텔 키를 수집하는 붐이 일었다든가 하는 사실.

내가 찾는 책을 서점 주인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헌책방 사이트에는 업로드는 되어 있는데 막상 보내주려고 하니 재고가 없거나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중고서적을 몇 명 안 되는 운영자가 관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운명이겠거니 한다.

원하는 서적이나 정보를 한 번에 찾아내는 것은 훌륭하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못찾아도 괜찮다. 이렇게 콘텐츠의 늪에서 헤매는 것이 나에겐 오락이 되었으니까. 한 마디로 나는 "그걸 대체 누가 궁금해 하지?"에서 '누가'를 맡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더 '이상한 거' 한번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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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와 <스크린> ⓒ 황소연


좀 더 '이상한 구경기'를 위해 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OTT에 서비스되지 않는 드라마를 방송사 사이트에서 찾아낼 수도 있다.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했던 'KBS <뮤직뱅크> 1회부터 다시보기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다. 헌책방에 들러 눈을 감고 아무 책이나 골라보는 건 어떨까. 내가 떠돌 수 있게 만들어주는 콘텐츠들은 사실상 무한하다.

내가 쓰려는 '이상한 구경기'는 과거의 것에 푹 잠수해 따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떤 장면에서 출발한 의문일 수도 있다. 콘텐츠가 살짝 건드리고 지나갔을 뿐인데, 그 잔상이 깊게 남은 물건이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구경을 위해, 앞으로도 '스킵'보다 '일시정지'를 자주 해보려 한다. 어떤 철 지난 이야기가 나에게 유의미한 '콘텐츠'가 될지 모르니 말이다. 
#드라마 #잡지 #넷플릭스 #OTT #레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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