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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도 철벽 감시당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32] '김지하'를 두려워했던 그들...

등록 2022.07.12 15:49수정 2022.07.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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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 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
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1974년 지학순 주교의 재판소식을 알리고 있는 <가톨릭시보>와 구속 중이던 김지하 시인.가톨릭시보·작가회의
 
군사독재 시기, 사법부의 치부는 검찰의 구형과 판사의 선고가 똑같아서 '자판기 판결', '정찰제 판결'이란 말에 오롯이 담겼다. 검사의 논고와 판사의 판결문이 다르지 않았다.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이 아닌 권력의 의중에 따랐기 때문이다. 

12월 31일 재판부는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하여 1977년 1월 6일 김지하와 변호인단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각한 것이다. 긴급조치 1호와 4호 위반 혐의로 무기형에 이어 반공법 위반 혐의로 7년형이 부가되었다. 사실상 종신형이다. 

재판은 '7년 징역형'의 선고로 1년 만에 끝났다. 선고 직전의 3시간에 걸친 최후진술에서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한마디 뿐이다. 

"오늘 구박하는 자들을 용서해달라. 그 용서의 표시로 이 성탄 주간에 흰 함박눈을 펑펑 쏟아내려 달라"였다. 나머지는 별로 기억에도 없지만 모두 그렇고 그런 소리들이었다. (주석 1)

무기수가 된 그는 장기간 독방에 갇혔다. 10월 14일, 누구도 2년 반 이상 독방에 홀로 가둘 수 없다는 법령에 따라 교정당국은 강도죄로 수감된 2명의 죄수를 김지하의 감방에 들여보냈다. 감시와 괴롭힘의 2중 역할을 띈 수인들이었다. 바깥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김지하의 양심선언을 보관하거나 돌린 것이 긴급조치 위반이라 하여 구속된 사람이 김윤수 교수 등 다수에 달하며, 문정현, 신현봉 신부는 김지하가 정치 보복으로 구속되었다고 말한 것이 사실 왜곡이라 하여 3ㆍ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음.

△ 76년 2월까지 성경 차입이 금지되었으며, 77년 2월까지 가족 접견이 금지되었으며, 그 이후도 월 1회밖에 접견이 안됨.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는 수차에 걸쳐 접견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음. 


△ 가족 접견 시간은 5분을 초과하지 못하며, 접견시 교도관 복장으로 갈아 입은 정보부원이 배치됨. (주석 2)

장기수가 된 그는 혹독한 옥고 속에서 면벽과 독서로 소일했다. 기결수가 되면서는 도서의 차입이 허용되었다. 종교ㆍ철학ㆍ자연과학 분야에 국한된 허용이었다.


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정한 내 공부의 시작이었다. 동서양의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 길고 긴  시간, 나는 그저 책 읽은 것밖에 한 일이 없는 듯 싶다. 지금의 나의 지식은 거의가 그 무렵의 수많은 독서의 결과다. 그러나 일반적인 독서 이외에 내가 참으로 힘을 집중해서 '공부'한 것이 네 가지였으니, 첫째가 생태학 스케치, 둘째가 선불교 - 셋째가 테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 넷째가 동학이었다. (주석 3)

박정희 정권의 감시와 회유는 감방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내 등뒤 위쪽에는 텔레비전 모니터가 붙어 있어 중앙정보부와 보안과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스물네 시간 내내 다 지켜보고 있으니, 조금만 이상한 행동이나 못 견디겠다는 흉내라도 냈다 하면 곧바로 소위 '구월산'과 '면도날'이 득달같이 달려와 꼬드겼다.

"김선생! 이제 그만하고 나가시지! 각서 하나만 쓰면 되는 걸 뭘 그리 고집일까?" (주석 4)

독재자와 오적들은 김지하의 존재가 두려웠다. 국내외의 석방운동이 그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감옥에서 김지하를 감시하는 사람이 열 명도 더 되었다. 그에게 온 인쇄물은 우선 검열을 받아야 했으며,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그에게 보내진 편지들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또한 김지하의 가족은 항상 중앙정보부의 감시 속에 있었다.

왜 한국의 집권자들은 그를 그렇게 철저히 감시하는가?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이 김지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김지하가 암흑, 불의, 부패 그리고 사회 내에 만연되어 있는 편파성을 고발한 것이 그 원인이 되어 집권자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그가 입을 열어 어둠 속에 감추어졌던 진리가 밝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들은 김지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주석 5)


주석
1> 푸미오 타부치, 정지련 역, <김지하론, 신과 혁명의 통일>, 138쪽, 다산글방, 1991.
2> <아! 김지하>, 326쪽.
3> <회고록(2)>, 420쪽.
4> 앞의 책, 430~431쪽.
5> 푸미오 타부치, 정지련 역, <김지하론, 신과 혁명의 통일>, 138쪽, 다산글방, 1991.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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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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