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지적허영ㆍ감상주의란 비판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47] 그의 생명사상과 관련, 찬반의 시각도 다양하다

등록 2022.07.27 16:44수정 2022.07.27 16:44
0
원고료로 응원
a

김지하와 그의 신간. 김지하와 그의 신간. ⓒ 문학과지성사

 
해방 이후 한국은 각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ㆍ발전을 이루었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이어 문화ㆍ예술ㆍ음악ㆍ영화ㆍ드라마ㆍ스포츠 등에서 그러하다. 아쉬운 대목이라면 근 1세기에 걸쳐 봉건군주제, 식민지배, 해방, 분단, 동족상쟁, 백색독재, 군부독재,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고유한 이상이나 우뚝한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한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1천년에 겪을까 말까한 도전과 시련을 우린 1세기 동안에 모두 치렀다. 그만큼 아픔도 많았고 한과 원 그리고 소망과 희망도 따랐을 터이다. 신라의 원효, 고려의 의천, 조선의 퇴계ㆍ율곡ㆍ남명ㆍ사명당ㆍ다산 등 때마다 출중한 사상가를 배출하였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한국 현대사에서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들고, 김용옥의 '동양학', 장회익의 '온생명사상', 김지하의 '생명사상'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이 당대인이고, 김지하의 경우 후년의 변신을 둘러싸고 진영간의 시각차이도 커서 당분간 일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은 미래의 과제로 남겨두자.

그는 1991년 4월 22일 '지구의 날'에 환경운동가와 '방앗골 천년 은행나무' 밑에서 한 제안을 했다. 〈환경에서 생명으로!〉였다. 후반부이다.

'환경에서 생명으로!'

시민 각자 각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커다란 생명의 그물임을 깨우치고 생명의 원리를 공부하며, 그 원리에 따라 총체적 오염에 스스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모든 환경운동은 이제 포괄적 생명운동으로 크게 차원변화를 해야 한다.

생명의 또 하나의 원리는 창조적 영성이다. 방앗골 은행나무 주변토박이 주민들은 요즘 매일밤 산신령과 큰 호랑이꿈을 꾸고 있다. 생명은 그렇게 신령한 것이다.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를 무능한 환경처나 무책임한 환경전문가에게 맡길 수만은 없다. 시민 각자가 사무치게 생명을 깨우칠 때 그 생명의 본성인 영성으로부터 다양한 창조적 대안을 얻을 수 있다. 영성이란 무슨 기이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과 강이나 산이나 공기나 천년 묵은 은행나무가 서로 다른 물건이 아닌 한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큰 느낌이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이 느낌으로부터 시작하여 창조적 대안으로서의 포괄적 생명운동으로 우리 자신과 자연을 살리는 일에 손잡고 나서자, 우선 방앗골 은행나무와 북한산부터! (주석 4)

그의 생명사상과 관련, 찬반의 시각도 다양하다.


<교수신문>이 2003년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고 가는가(현대 한국의 자생이론 20)>에 김지하에 대해 신승환 교수(가톨릭대)는 <잘 씌어진 한 편의 사색>이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는 스스로 생명의 패러다임이란,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연결되는 우주적 전체 유출의 전체 그물망 속에서 파악하는 관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일체는 우주 생명이며, 무기물조차 생명체이다. 나아가 이 우주 생명은 기론에서 이해되고, 신과학과도 관련되며 마침내 모든 이해 체계의 근원이라고까지 말한다. 생명은 일기(一氣)이며 지기(至氣), 살아 움직이는 무(無)이며, 곧 한울님이다. 그러면서도 그 한울님은 인격신의 면모조차 지니고 있다. 도대체 어떤 근거와 원리에서 생명이 기(氣)로 이해되는가.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것 안에 있는 생명.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의 존재론적 타당성은 어디에 자리하는가. (주석 5)

이 책은 발제문에 이어 <김지하의 생명사상에 대한 학계의 평가 - 대안 패러다임의 시(詩)적 수원지>에서 "김지하의 생명사상에 대해서는 비판과 옹호가 팽팽히 맞서왔다. 창조적 깊이를 보여준 우리 사상이라 추켜세우는가 하면, 신비ㆍ퇴행ㆍ국수주의라고 냉소도 많이 보냈다. 이 양극단 사이에도 또 무수한 입장들이 있다."고 전제 다음과 같이 기술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생명사상 비판은 학문적 엄밀성을 따질 때 목소리가 높아진다. 서양 철학자 김상봉 씨는 김지하의 학문방법론은 남의 이론을 성찰 없이 끌어들이는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준다며 지적허영과 자기 감상주의를 벗지 못한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서로 상이한 배경을 지닌 개념들을 생명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풀려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고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반면 '우리말로 철학하기'를 이끄는 이기상 외국어대 교수(철학)는 김지하가 한국인의 삶의 문법에 각인되어 있는 내재적 원리를 끄집어 내 동서고금의 통합적 사유로 재해석하고 세계인의 공통 화두인 생명 문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비빔밥으로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한국적 사유 전통을 훌륭하게 구현했다는 것이다. (주석 6)


주석
4>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154~155쪽.
5>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고 있는가>, 220~221쪽.  
6> 앞의 책, 232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AD

AD

AD

인기기사

  1. 1 우리도 신라면과 진라면 골라 먹고 싶다
  2. 2 "백종원만 보고 시작한 연돈볼카츠... 내가 안일했다"
  3. 3 펄펄 끓는 아스팔트에 엎드린 부모들 "참사 멈춰 달라"
  4. 4 이종섭·임성근·신범철, 증인 선서 거부 ..."짜고 나왔나"
  5. 5 '설거지나 할 손이 아닌데' 뚝배기 닦다 북받친 설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