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시집 '애린'의 사연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48] 애린의 실제 인물이 누구냐고?

등록 2022.07.28 16:14수정 2022.07.28 16:14
0
원고료로 응원
a

땅끝 전망대의 김지하 애린시비 땅끝 전망대의 김지하 애린시비 ⓒ 정윤섭

 
시인의 특권은 무한대의 상상력이다.

합리성의 과학과 실제성의 행정과 분리되는 대목이다. 언제부터였는지, 김지하의 심중에는 '애린'이 꿈틀거렸다. 상상과 몽상과 추리가 혼합되어 '실체'가 형성되거나 시화로 나타났다. 해남에서의 일이다.

1986년 3월 <애린>이란 제호를 달고 시집을 냈다. 첫째권이다. '김지하 서정시집'이란 부제가 말하 듯, 서정시집이다. 51수가 실리고 문학평론가 채광석의 <발문>을 붙였다. 시인은 '애린'을 말한다. 

애린의 실제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만해더러 님이 누구냐고, 어떤 여자냐고 묻는 바보짓처럼.

구태여 그리움이니 목마름이니 잃어버린 민주주의니, 분단된 조국 따위 뱀발을 붙여 섣부른 설명을 가할 필요가 무엇 있으랴. 구태여 말하라면 모든 죽어간 것, 죽어서도 살아 떠도는 것, 살아서도 죽어 고통받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한 진혼곡이라고나 할까. 안타깝고 한스럽고 애련스럽고 애잔하며 안스러운 마음이야 모든 사람에게, 나에게, 너에게, 풀벌레 나무 바람 능금과 복사꽃, 나아가 똥 속에 마저 산 것 속에는 언제나 살아 있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매순간 죽어가며 매순간 태어나는 것을. 그러매 외우 이문구형은 <애린>을 일러 인물시뿐 아니라 만물시라고 하였것다. (주석 1)

시집은 서시격으로 <소를 찾아나서다>를 앞자리에 세운다.

        소를 찾아나서다


 우거진 풀 헤치며 아득히 찾아가니
 물은 넓고 산은 멀어 갈수록 험하구나
 몸은 고달프고 마음은 지쳐도 찾을 길 없는데
 저문 날 단풍 숲에서 매미울음 들려오네
  ㅡ 열 가지 소노래 첫째 

 네 얼굴이
 애린 
 네 목소리가 생각 안 난다
 어디 있느냐 지금 어디
 기인 그림자 끌며 노을진 낯선 도시
 거리 거리 찾아헤맨다
 어디 있느냐 지금 어디
 캄캄한 지하실 시멘트벽에 피로 그린
 네 미소가
 애린
 네 속삭임 소리가 기억 안 난다
 지쳐 엎드린 포장마차 좌판 위에
 타오르는 카바이트 불꽃 홀로
 가녀리게 애잔하게
 가투 나선 젊은이들 노래소리에 흔들린다. (주석 2)



주석
1> 김지하, <간행에 붙혀>, <애린(1)>, 실천문학사, 1986.
2> 앞의 책, 13~1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신간회 창립에 천도교 큰 역할

AD

AD

AD

인기기사

  1. 1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2. 2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3. 3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이시원 걸면 윤석열 또 걸고... 분 단위로 전화 '외압의 그날' 흔적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