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조림 만들기처음에는 황도, 두 번째는 딱복(딱딱한 복숭아)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두 번째. 올여름에만 세 번을 만들어 먹고 있다.
박정선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야 나'(웃음). 아기 때부터 배만 부르면 잘 놀던 내가 자꾸만 이렇게 말하더란다.
"마음무꼬 사도, 마음무꼬"
"마음무꼬 먹고 싶다, 어엄마."
도대체 이 꼬마가 뭘 사달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엄마는 급기야 동네 가게에 데리고 가서 가리켜 보라고 했다고. 먹는 것은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하던 아이는 짧고 오동통한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는데, 거기엔 '황도 복숭아 통조림'이 떡하니 놓여있더란다. 저게 맞냐고 여러 번 물어보는 말에 꼭 먹고 말겠다는 의지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나? 엄마 손에 들린 복숭아 통조림을 빨리 먹고 싶어 앞으로 뛰어 가다가 안 넘어졌나 몰라.
집에 돌아와 통통한 배 앞에 놓인 노랗고, 향긋하고, 탐스런 복숭아를, 엄마 한 번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혼자 순식간에 다 먹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놀더란다. 엄마는 맛보다도 도대체 왜 이걸 '마음무꼬'라고 했는지 궁금했는데 며칠 후에 그 비밀이 밝혀졌다고.
그즈음 TV에서 복숭아 통조림 광고를 했고 마칠 때 "마음 놓고 드세요~"라는 멘트가 나오더란다. "저걸 보고 '마음무꼬'라고 했구나" 싶었던 엄마는 그게 또 귀여워서 식구들에게 얘기했고, 이제는 형부와 조카들까지 다 알아서 "너거 막내 이모 어릴 때 어땠는(어떻게 한) 줄 아나?"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또 하나는 아버지 이야기다. '마음무꼬' 때 나는 어린이가 먹기엔 많은 양을 혼자 다 먹어서인지(하하) 그 뒤로 복숭아 조림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집에 오면 엄마가 아버지를 위해 만들어 둔 복숭아 조림을 냉장고에서 발견하곤 했다.
더위를 많이 타고 이가 좋지 않았던 아빠가 특히 좋아했던 간식, 복숭아 조림. 즙을 많게 해서 냉장고에 두면 "아, 시원하다" 하며 드셨고 저녁 식사 뒤로 군것질하지 않는 엄마도 그때는 유혹에 넘어가서 같이 드시곤 했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엄마는 마치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너거 아버지가 복숭아 조림 참 좋아한다 아이가"라고 하신다. 나는 아버지를 추억할 때 "아빠가 OO 했잖아"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데 엄마는 "좋아한다 아이가"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말한다.
'50년 넘게 함께 사셨기에 어쩌면 엄마 마음속 아빠는, 아직도 살아있는 느낌인 걸까...'
향도 좋고 맛도 좋은 복숭아 조림의 응용 버전
'마음무꼬'와 '너거 아버지 좋아한다 아이가'가 함께 딸려 나오는 우리 집 복숭아 조림. 올해도 엄마는 조림용 복숭아를 사러 시장에 가자고 하셨다. 마트가 아닌 시장에 가야 조림하기에 적당한 복숭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 온 복숭아는 깨끗이 씻은 다음 씨와 과육을 분리한다. 그런 다음 커다란 스테인리스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하면 조금만 지나도 온 집안에 향긋한 복숭아 냄새가 퍼진다.
기분 좋아지는 냄새를 일부러 크게 들이마시며 감탄하다가 뚜껑을 열면, 눈 앞을 가리던 연기 사이로 과육에서 나온 물이 가득하다. 어느 정도 끓고 나면 설탕을 넣는데 우리 집은 엄마의 취향에 맞춰 (잼을 만들 때보다는) 적게 넣는다. 설탕이 들어가면 즙이 또 나오기 때문에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계속 졸인다.
완성되면 한 김 식힌 다음 일주일 정도는 냉장실에 두고 먹고, 남은 것은 한 번 더 끓여 냉동실에 넣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꽤 오랫동안 복숭아 조림을 먹을 수 있다.
차게 해서 즙과 함께 그냥 떠먹기도 하지만, 핸드블렌더로 갈고 우유를 부어 '복숭아 라떼'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봄에 유행하는 딸기 라떼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우유와 향긋한 복숭아가 어우러진 달콤한 맛은 한번 먹어보면 눈이 '똥그래지는' 맛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