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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안보, 대통령의 식상한 빈말 되풀이 안 되려면

이대로 가면 식량악당·식량난민으로 전락... 윤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

등록 2022.09.07 21:29수정 2022.09.0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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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국제곡물 및 식품 가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등하자 전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월 10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윤석열정부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식량자급률을 반등시켜 '외부 충격에도 굳건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첫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

이에 대통령은 "식량자급률을 50% 이상으로 확보하고 안정적인 국제 공급망을 구축하길 바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도 식량주권 확보와 식량안보를 위한 농지확보와 농지관리를 공약했다. 그동안 역대 정부마다 해 온 익숙한 '허언(虛言)'이다.

식량주권 확보, 역대 정부의 거짓말

식량주권 확보와 식량자급률 향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식량위기와 식량무기화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 아니라 과연 그것을 어떻게 실현(실천)할 것인가이다. 과연 윤석열정부는 식량자급률을 반등시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첫 정부가 될 수 있을까.

과거 정부도 국제곡물 가격이나 식품 가격이 상승하고 해외 공급이 어려워져 식량위기가 고조되면, 식량주권과 식량안보를 위해 해외농업개발을 추진해 안정적인 해외공급망을 확보하고 우량농지를 보전해 식량자급률을 향상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으며, 농지가 매년 크게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1999년 2월에 제정된 농업·농촌기본법 제6조(국민식량의 안정적 공급)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국가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하여 적정한 식량자급수준의 목표를 설정·유지하며 적정한 식량재고량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 법을 전면 개정해 계승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2007년 12월 제정)은 "식량 및 주요 식품의 적정한 자급목표, 그 추진계획"을 포함하여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립된 '2013~2017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은 곡물자급률(사료용 곡물 포함)을 2012년 22%에서 2017년 30%, 2022년 32%로 높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2018~2022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은 곡물자급률을 2016년 23.8%에서 2022년 27.3%로, 식량자급률(사료용 제외한 식용만)은 50.9%에서 55.4%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식량자급률은 2010년 54.1%에서 2021년 45.8%로, 곡물자급률은 27.6%에서 20% 이하로 급속히 낮아졌다.

한마디로 식량정책의 참사다. 그러나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곡물자급률의 지속적 하락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은 법 서비스이고, 식량안보 강화는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로는 식량자급 목표를 결코 달성할 수 없다.

법을 밥 먹듯이 어기고 국민을 기만하는 농정관료에게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가 쌀만이라도 자급할 수 있게 된 것은 쌀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을 물어 장관을 경질할 정도의 강한 드라이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농민과 농산물, 물가안정의 희생양

둘째, 정부는 언제나 농산물을 물가안정의 희생양으로 삼아 농민의 생산 의욕을 꺾었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농수축산 부문을 희생했다. 뿐만 아니라 물가가 오르면 농산물가격 잡기에 급급했다. 만만한 게 농민이다. 사실 이번 농식품부의 대통령 보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하반기 농식품가격 안정'이다.

농식품부는 밥상 물가를 잡기 위해 무·배추·사과·배 등 주요품목의 국내 공급을 확대하는 한편, 축산물(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과 양파, 마늘, 감자, 배추 등을 해외에서 신속하게 도입하고, 제분업체에게 수입 밀가루 가격상승분의 70%를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에 쌀값 폭락, 연료비나 사료비, 비료값 등 농자재값의 급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어떠한 대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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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등 농민 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역 12번 출구 인근에서 농업 생산비 보전 및 구곡 추가 시장격리, 신곡 선제 시장격리를 촉구하며 궐기 대회를 마친 뒤 삼각지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2.8.29 ⓒ 연합뉴스

 
밥상 물가의 상승은 서민의 가계에 직접적으로 부담을 주기 때문에 적절한 대책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농산물과 농민의 희생을 통해서 이뤄질 이유는 없다. 농식품은 하루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가격상승의 체감 효과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농산물가격이 물가나 가계비에 주는 영향은 체감보다는 크지 않다.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할 때 사용하는 대표 품목의 가중치를 보면, 총 소비를 1000이라고 했을 때 농축산물은 83.8에 지나지 않는다. 즉 농축산물 가격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83% 오른다. 그리고 가계소비지출 가운데 식료품비 지출의 비율을 나타내는 '엥겔계수'는 최근 조금 높아지기는 했지만 12.85%로 여전히 선진국 수준이다.

다시 말해 농산물가격이 조금 상승하더라도 평균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다만, 체감도가 높고 언론의 과장된 편향적 보도 탓으로 크게 느껴질 따름이다. 쌀값이 전년 대비 20% 이상 폭락해 밥 한 공기 가격이 220원에 지나지 않아 농민들은 큰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를 넘을 전망이다. 농민을 희생하여 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저소득층·취약계층 직접 지원이 더 효과적

평균적으로는 농산물가격 상승이 가계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해도, 소득계층별로 그 영향이 매우 다르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일수록 농산물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이 매우 큰 반면, 고소득 계층에게는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계층은 가처분소득의 41.8%를 식비에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농산물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식량위기 시기에는 정부가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가 시범적으로 농식품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는데 우선 당장은 다음과 같은 '뻘짓거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축산물을 0% 할당관세(무관세)로, 양파·마늘 등에 대해 저율관세할당(TRQ)으로 수입을 늘린다고 한다. 이처럼 무관세 혹은 저율관세로 농축산물이 수입되면 식품기업의 이익은 늘어나지만 농가에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반면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다. 제분업체에게 밀가루 가격상승분을 지원하는 것도 제분업체의 배만 불릴 뿐 실제로 밀가루 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바는 적다.

그리고 최근 수입농산물 가격이 상승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탓도 있지만, 환율 상승 요인이 크다. 관세 인하 효과는 환율 상승으로 상쇄돼 그 효과가 크지 않고, 환율이 안정돼야 수입농산물 가격도 안정될 것이다.

무관세 혹은 저율관세로 농축산물을 수입하는 것은 물가안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 농민에게 주는 피해는 크다. 정책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무관세와 저율관세로 2000억 원 이상의 재정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관세를 유지하면서 그 돈으로 저소득계층이나 취약계층에게 식품 바우처를 지급하는 게 서민 가계 안정에 효과적이다. 마찬가지로 제분업체에 밀가루 가격을 낮추기 위해 546억원의 예산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그 돈도 저소득층을 위한 식품 바우처에 사용하면 좋다.

물가안정을 위해 농민을 희생하는 정책은 하책이다. 무관세와 제분업체 지원 등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늘릴 것이 아니라, 이런 돈들을 합쳐 식품 바우처를 대폭 확대하여 물가상승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서민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이 상책이다.

농지 파괴 주범, 국가·지자체·대기업

셋째, 정부가 식량생산의 가장 중요한 기반인 농지를 너무 쉽게 파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지면적은 1970년 229만 8000ha에서 1990년 210만 9000ha, 2010년 171만 5000ha, 2020년 156만 5000ha로 급속히 줄어왔다. 50년 동안 73만 3000ha, 전체 경지면적의 30% 이상이 감소했다.

2010~2020년에 매년 여의도 면적의 약 60배에 달하는 경지가 줄어든 것이다. 경지면적이 줄어든 가장 커다란 이유는 농지가 다른 용도로 전용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지면적은 1975년의 224만ha에서 2018년에 159만 6000ha로 64만 4000ha가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농지전용 면적은 총 46만 6286ha로 72%를 차지한다.

전용되는 농지는 농업생산 기반정비가 잘 돼 있거나 교통이 편리해 농사짓기 좋은 땅이지만 전용하기도 좋다. 농지전용이 쉽게 이뤄지는 이유는 현행 농지제도 때문이다. 농지법 28조 1항은 "시·도지사는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농업진흥지역을 지정한다"고 돼 있는데, 이 조항이 농지보전이 아니라 실제로는 농지전용을 쉽게 허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농지 가운데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된 면적은 전체 농지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전체 농지의 절반 이상이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로 분류돼 쉽게 전용대상으로 노출된다. 심지어 농업진흥지역 내의 농지조차 매년 전체 농지전용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2000∼3000ha가 전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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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서 보리 수확이 끝나고, 논에 벼농사를 위해 물을 채워 넣으면서 농촌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2022.5.26 ⓒ 연합뉴스

 
농지전용(파괴)의 주범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대기업이다. 농지가 도로, 철도, 공항, 산업단지, 신도시, 혁신도시, 주택단지 등 다양한 명목으로 파괴되고 있다. 이에 편승해서 농지투기가 기승을 부린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건설된 산업단지가 전국에 1246개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지만, 산업단지는 임야뿐 아니라 농지를 파괴하여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산업폐기물 처리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과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농업진흥지역 농지전용의 70% 이상이 공용·공공용·공익시설이란 사실에서 보듯이 국가가 농지전용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의 재생에너지 계획에 의한 태양광 사업으로 농지전용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식량자급률 반등 위한 정부의 과제

윤석열정부는 과연 '식량자급률을 반등시킨 첫 정부'가 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그런 의지가 정말 있다면 적어도 다음 몇 가지 점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첫째, 법을 지켜야 한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 명시돼 있는 식량자급률(곡물자급률) 목표치를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만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

둘째, 식량자급률 향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필요한 농지면적을 정하고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대기업이 앞장서서 농지를 파괴(전용)한다면 식량자급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 물가안정을 위해 언제나 농민을 희생하는 하책은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런 나라는 없다. 농산물가격은 농가경제와 소비자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안정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다. 그렇지만 그것이 농가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넷째, 국가는 모든 대책에서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문제해결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재난과 위기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기후변화와 식량위기는 누구에게는 돈벌이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 피해는 오롯이 아무런 죄도 없는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지역의 몫이다.

'식량악당'·'식량난민'으로 전락 막아야

거듭되는 그리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식량위기와 식량무기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식량악당'이나 '식량난민'이 돼서는 안 된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후악당' 된 대한민국… 한국인 식량난민 될 가능성 높다"고 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대기질 OECD 36개국 중 35~36위, 기후변화대응지수 61개국 가운데 58위 등을 근거로 우리나라를 기후와 환경을 해치는 '기후악당(climate villain)'으로 부른다.

2020년에 옥스팜과 스톡홀름환경연구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배출했고, 상위 1%는 하위 50%보다 두 배 이상을 배출했다. 우리가 배출한 탄소로 인한 기후변화가 탄소배출이 가장 적은 아프리카에 가장 커다란 타격을 준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악당'의 일원임이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기후변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당장 심각한 식량위기를 가져오고 있지 않지만,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 많은 식량난민을 낳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식량생산 잠재력이 상당히 있음에도 국내 생산보다 식량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함으로 인해 가난한 제3세계의 식량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식량악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식량위기가 확산되면 곡물자급률이 20%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가장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고, 많은 국민은 '식량난민'으로 전락할 것이다.

기후위기와 식량위기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삶 자체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일반 국민들은 매우 무감각하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위기 신호를 발신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위기'를 되풀이해 듣다보면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익숙해져 '위기'에 무뎌지기조차 한다. 일상에 매몰돼 하루하루 삶이 바쁜 대중들을 탓할 수 없다. 그래서 정치가 있고 정부가 있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고언이 '쇠귀에 경 읽기'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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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지역재단 상임고문 ⓒ 박진도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식량 안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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