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경남본부는 18일 창원에서 '돌봄 국가책임, 공공성 강화, 돌봄노동자 고용안정 적정임금 보장 촉구' 관련 활동을 벌였다.
윤성효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동안 돌봄은 사적인 것으로 평가절하 되면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동시에 돌봄은 대표적으로 성별 고정관념이 작동하는 분야이자,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취급되며 끊임없이 사소화, 저평가 되면서 돌봄 영역 안에서의 성별 분업과 돌봄 노동자 저임금 문제 등이 심화되어 왔다.
이 글은 최근 한국에서 정책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영 케어러(Young Carer) 이슈를 여성주의에 기반한 돌봄과 민주주의 측면에서, 영 케어러의 정의와 영 케어러를 둘러싼 다양한 중첩된 어려움 등을 영 케어러를 젠더 관점으로 분석한 해외 연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마지막으로는 한국 정부가 올해 초에 발표한 영 케어러 지원 대책 수립 방안을 보며 추후 한국이 관련 제도와 정책 마련 시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지에 대한 내용도 짧게 다룬다.
영 케어러 규모, 대략 청소년 인구의 5~8%로 추정
영 케어러는 가족 구성원이 만성질환이나 신체장애, 정신적 문제로 장기간 돌봄과 간호가 필요하지만, 가족 내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을 돌볼 사람이 없을 때, 가족의 돌봄과 집안일을 도맡은 18세 미만의 아동을 말한다.
영 케어러의 돌봄 활동은 약 복용 관리나 이동 보조 등의 일반적인 돌봄부터 목욕과 용변 보조 등의 신체 돌봄, 정서적 지원, 각종 집안일과 형제 돌보기 등 아픈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것 이외에 다양한 내용을 포함한다. 국가별로 영 케어러의 연령 범위는 다소 차이가 나는데, 대표적으로 영 케어러에 대한 정책이 잘 갖추어진 국가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경우 5세~17세 아동과 청소년을 영 케어러로, 18세~24세를 청년 케어러(young adult carer)로 분류하며, 호주는 청년 케어러(young adult carer)까지 포함하여 25세 이하 청년과 아동으로 정의한다. 한국은 34세 미만의 청년을 영 케어러(가족돌봄 청년)로 정의하고 있다.
영 케어러에 대한 국가의 인식‧정책 대응에 따라 국가별 수준을 1단계(통합적‧지속가능정책의 완비)에서 7단계(무반응)까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영 케어러에 대한 법적‧정책적 인지가 전무한 실정으로 7단계인 무반응 국가 그룹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영 케어러'라는 용어 자체는 낯설지라도, 어렸을 적 아픈 부모를 돌보거나, 아픈 부모를 대신해 가사 노동을 하고 동생을 돌보는 친구나 이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도 영 케어러의 존재가 있었지만 그동안 이들의 존재는 '효자' 혹은 '효녀'의 타이틀로 명명되며 당연한 가족 내 의무를 져야하는 것처럼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보이지 않던 가족돌봄청년(영 케어러)의 실태... 정책의 사각지대
일본에서 영 케어러 실태조사를 통해 발굴된 사례를 보자. 16세부터 20세까지 할머니의 돌봄을 담당한 영 케어러 B씨의 경우, 할머니의 장기간 투병생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비가 저렴한 고등학교로 전학을 했고, 투약부터 통원, 용변과 식사 보조, 집안일까지 주로 담당하다보니 학교를 결석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이나 아버지는 B에게 "할머니 심부름을 하는구나", "그래도 가족이잖아"라는 답변을 받으며 본인이 처해있는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처럼 그동안 비가시화되어 있던 영 케어러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이를 대상으로 한 제도 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올해 초에야 영 케어러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시작했는데, 4월 초 1차 실태조사를 시작하여 7월 초를 기준으로 2차 조사를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내 영 케어러 규모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정부 실태조사 결과를 확인해야하지만, 해외의 연구에 따르면, 대략 청소년 인구의 5~8%를 영 케어러로 추산한다고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한국에도 약 18만 4천 명에서 29만 5천 명 사이의 영 케어러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사회 내 영 케어러 담론 확산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 (가난의 경로를 탐색 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의 저자 조기현은 코다코리아가 지난 7월 개최한 '영 케어러와 코다' 강연에서 영 케어러가 가족 내에서 돌봄자이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감, 청소년 혹은 청년기 생애주기 과정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학습‧취업과 관련된 어려움, 가족의 생계를 담당해야하는 현실적 문제 등 영 케어러가 겪고 있는 중첩적 어려움을 소개했다.
한국의 많은 돌봄 정책은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노인이 아닌 아픈 부모의 경우 국가의 돌봄 정책 대상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혈연 '가족' 위주의 정책과 여전히 존재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개개인이 처해있는 다양한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복지의 대상을 획일적으로 판단해버리곤 한다.
장기적인 돌봄을 수행하는 영 케어러들은 특히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정신건강 문제를 빈번하게 겪기도 한다. 학령기 연령의 영 케어러들은 지속적인 돌봄활동으로 인해 학교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영 케어러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2015년과 2016년에 특정 지역의 초등학교, 중학교, 특별지원학교 전체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들은 영 케어러의 가족 돌봄으로 인해 영 케어러들이 잦은 결석과 지각, 학습능력 부진을 보인다고 답했다.
아동에게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지만 영 케어러들에게는 이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는 다른 국가에서도 반복되는 현상으로 캐나다의 한 연구에 따르면 영 케어러의 결석율이 10.8%에 이르고, 대학에 재학 중인 청년 영 케어러 중 56%는 가족 돌봄으로 인해 학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학업을 완료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잦은 결석과 이에 따른 낮은 학업 성취도, 불안감 등은 영 케어러들의 현재의 학습 상황뿐만 아니라 고등교육 진학, 취업 등 미래 상황과도 직접 연결이 된다.
돌봄은 연령에 상관없이 여성에게 더 많이 주어진다
한편 영 케어러 중 여성의 비율이 더 높고, 여성이 돌봄에 대한 책임이나 기대를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Becker과 Sempik의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청년 돌봄자(young adult carer)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육체 건강과 정신 건강 문제를 더 심각하게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 거주하는 11세에서 17세 사이의 영 케어러를 연구한 연구에서는 영 케어러 응답자 중 7%가 건강이 나쁘거나 매우 나쁘다고 응답했고,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는데,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응답은 여성 응답자에게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영국 내 다른 연구에서는 여성 아동이 남성 아동보다 더 포괄적인 돌봄 역할을 수행하며, 비슷하게 14세~25세의 영 케어러의 경우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은 수준의 돌봄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영 케어러 이슈를 젠더 관점으로 분석한 몇몇 연구에 따르면, 영 케어러 중에서도 여성 청소년의 비율이 더 높고, 가족 내에서 돌봄에 대한 책임이나 기대를 여성이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내 성별이 여성인 가족구성원에게 돌봄의 역할이나 책임이 더 많이 주어지고, 이에 따른 영향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성별을 고려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며, 때문에 영 케어러의 이슈도 젠더 관점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영 케어러의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에 대한 성별 분업과 성별 고정관념은 대부분 국가의 공통적인 문제로 오랫동안 인지되어 왔지만, 이를 젠더 관점에서 분석하고 연구한 자료는 부족하다. 영 케어러에 대한 연구와 제도가 비교적 이루어진 영국과 캐나다 등에서 관련 정책과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담당자들은 영 케어러 정책 설계에서 젠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상 해당 국가에서는 젠더를 고려한 영 케어러 연구조차도 많이 수행되지 않고 있다.
호주에서 2020년 영 케어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영 케어러 중 여성 청소년의 비율이 76.9%로 나타났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영 케어러의 69.8%가 여성 청소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에서도 영 케어러 관련 조사가 이루어진 두 개의 지역 모두에서 돌봄을 맡은 아동의 성별 중 여성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미나미우오누마 시 여성 아동 비율 64.6%, 후지사와 시 여성 아동 비율 61.8%).
한편 가족 내 성인 생계부양자가 질병 등으로 노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영 케어러가 돌봄뿐만 아니라 생계의 책임까지 져야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케냐에서 몇몇 여아들은 생활을 위한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해 성매매에 대한 압박을 받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 케어러를 다룬 여러 연구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돌봄이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라는 사회 통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여성은 돌봄의 역할을 가족 내에서 더 많이 지정받는다고 밝혔는데, 가족 구성원 내의 출생 순서보다 젠더가 돌봄에 있어서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각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데, 탄자니아의 경우 남성은 성인이 되면 대체적으로 집을 떠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 돌봄을 수행하기 불가능하지만, 여성은 집에 남아 아버지나 다른 남성 친척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 돌봄 수행에 대한 기대를 더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