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화장실 입구에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역무원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성이 행복한 서울, 여행(女幸) 화장실’ 안내판에 ‘거짓말’ ‘대한민국에 존재하긴 하는가?’ 등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메모가 붙어 있다.
권우성
- 이번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주변 여성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김 : "사건이 있었던 밤에는 가해자도 우리 회사 직원이었던 걸 몰랐고, 그저 어떤 승객의 여성 혐오 범죄인 줄 알았어요. 강남역 살인사건 때도 충격이었지만, 내가 일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무섭더라고요. 다음 날 가해자가 같은 직원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다들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얘기하던데, 그 기회들을 어떻게 다 놓쳤을까 싶었어요."
- 책모임에서 신당역 사건 이후 일터와 여성 노동자의 문제, 회사의 책임 등을 담은 입장문을 작성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 : "14일 밤에 사건을 알게 되었어요.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볼 수가 없기에,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어떻게 요구하고 바꿔야 할지 생각했어요. 다음 날 아침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원이었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스토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 명확하게 직장 내 성폭력의 문제인 거잖아요. 우리는 정말 작은 힘을 가진 조직이지만, 우리 처지에서 입장을 내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자고 제안했고, 초안을 쓰고 검토했어요. 노동조합에서는 '고인의 죽음을 추모한다' 이외의 입장이 안 나오다 보니, 그나마 나와 있는 우리 입장이 퍼졌던 것 같아요."
- 공사에서는 사건 이후, 여성 노동자의 당직 배제, 호신용품 지급 등을 대책이라며 내놓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요?
김 : "그저 당직에서만 뺀다고 여성이 혼자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이 부족한 이상 순찰이나 위기 상황에 출동하는 것들은 혼자 할 수밖에 없어요. 이 사건은 공사 내 성폭력이잖아요. 그런데 여성을 배제하고 분리하는 건 오히려 공사 내의 성차별적 인식을 공고히 하는 거예요. 현재 공사에서 호신용품 선호도 조사를 하고 있어요. 전기 충격기, 삼단봉, 페퍼 스프레이 중에서 선택하라 하고 있어요. 전혀 도움이 안 되죠."
이 : "(회사는) 만약에 내가 혼자 순회하다가 다치면, 그때는 방검복 안 입고 나간 나를 향해 책임 추궁을 할 건가요? 우리는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회사가 책임지고 구조를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호신용품을 줄 테니 너희가 스스로를 지키라는 거잖아요. 기본적인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호신용품을 주겠다는 것은, '안전을 알아서 지켜라'는 말 외엔 아무것도 아니에요. 노동자의 안전엔 사장 또한 책임져야지, 왜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가야 하나요?"
- 일터에서 만성적인 성차별적 문화와 노동환경이 여성노동자들의 업무수행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나요?
이 : "여성 노동자들이 교대 근무를 시작할 때 거점 숙소를 마련했지만, 상징적으로 몇 개만 지었어요. 그러다 보니 여성노동자들은 야간근무를 마치면 막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해야 해요. 또 아침에는 첫차를 타고 업무가 준비된 역으로 가야 하고요. 야간에 최종적으로 업무를 마무리하거나, 새벽에 업무가 시작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을 남성노동자와 함께하지 못하죠. 숙소 때문에 이동하니까요. 밤에 이동하는 당사자 이외에 노동조합, 공사 모두 그동안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여성노동자들이 원만하게 적응하고 일을 하기에 필요한 침실이나 샤워실, 탈의실 등의 시설이나 조건을 만드는 게 더디게 진행되는 거죠."
김 : "조합에는 여성 간부 자체가 없어요. 회의하거나 안건을 올리는 것 등을 다 남성들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리는 것 같아요. 본인들이 숙소를 이동해 보지 않았고 업무에서 배제되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잘 못 느끼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 책모임에서는 사측에 근무자 인력확충과 더불어, '조직 내 성평등한 조직문화 구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무엇일까요?
이 : "교통공사 내 성차별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고, 조직문화에 대한 현재의 실태를 조사하는 게 출발이어야 해요. 사고는 공사의 책임으로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태조사를 위한 TF를 꾸린다면 주도권은 노동조합에 있어야 합니다. 노동조합이 주도적으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고, 현장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야 해요. 부딪히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여성노동자들이 말할 수 있게 해야 해요.
회사 내에서 방치되는 여성을 향한 수많은 혐오 발언들에 대해서도, 노조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해야 해요. 예를 들어 생리 휴가와 관련한 문제제기 발언들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조직이 혐오나 비난 또는 조롱을 용인하고, 여성은 내상을 입는 거잖아요. 노동조합도 여기에 대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김 : "(여성을 향한) 혐오 발언도 심각해요. 교대 근무자의 경우 대부분 한 조에 한 명은 여직원이 포함되는데, 여직원이 더 온다고 했을 때, '난 남직원을 받고 싶은데 여직원이 온다. 힘들어지니까 싫어'하는 분위기가 너무 팽배해요. '여자 역장 오면 피곤한데.'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스토킹을 당했는데도 공사는 몰랐다고 하잖아요? 모르는 바로 그게 문제예요. 피해자가 정말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회사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잖아요. 매뉴얼이 있으면 뭐 하나요? 실질적으로 피해자가 안심하고 신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