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식했던 배아.
박영
착상만 성공하면 임신 과정이 아름답게 해피엔딩을 맞이할 줄 알았다. TV 주말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욱' 하는 시늉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여성의 모습이 해피엔딩의 피날레를 장식하듯이 임신 성공이 인생 성공처럼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하루하루를 선사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망상이었다. 인생이 그리 만만할 리가 없다. 착상에 성공하고 나서도 '노산'에 '초산', '쌍둥이' 산모가 된 나는 '고위험군' 꼬리표를 달아야 했고, 또다시 유산과 조산 위험률과 각종 수치는 불안을 자극했다. 숫자의 마법은 여전히 유효했다.
'먼 길을 오래 달려오는 아가야, 따뜻한 엄마 품으로 빨리 달려오렴.'
병원 시술실 천장에 적혀 있던 문구다. 이 문구를 보며 나의 간절함이 묘하게 왜곡되어 나를 숫자의 노예로 만들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간절하다 못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된 '임신'은 마치 '누가 누가 빨리 임신에 성공하나?' 경쟁하듯이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좋네요', '잘하고 있어요', '확률이 높아요', '잘 될거예요'와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갈구하게 했다.
의사는 그저 의학적인 근거를 말해줄 뿐인데도 나의 부족함과 결핍을 지적당하는 것처럼 느끼며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을 품기 위해 병원에 왔음에도 생명을 품지 못하는 온갖 이유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확률과 수치를 앞세워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답만을 가지고 있는 의학의 세계와 결코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요소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고군분투했다. 무엇 하나를 선택하여 부여잡고 의지하며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나 차츰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나는 문제집 한 권 풀고 다음 문제집 푸는 마음으로 다녔어."
시험관 시술을 먼저 경험한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다. 시술 과정 내내 이 말이 떠올랐다. 문제집 한 권을 풀고 손을 탁탁 털며 '끝!'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삶은 내게 다음 문제집을 주었다.
또 다시 숫자로 정리된 세계와 울렁이는 감정의 파도, 얽혀있는 행운과 불운, 불명확한 희망과 체념의 경계 등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복잡미묘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주어진 문제를 풀어나갈 수밖에.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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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의 고리를 정성스럽게 연결하고 싶어 움직이고 글을 씁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그날을 오늘도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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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이 올지 모릅니다" 그렇게 시작된 시험관 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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