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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마주했을 참사... 진상 모르면 애도도 불가능"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김태형 사회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등록 2022.11.05 00:09수정 2022.11.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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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권우성
  
지난 10월 29일 밤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갔던 시민 156명이 압사로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더구나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연관 검색어로 '트라우마'라는 단어도 뜨고 있다. 한 전문가는 트라우마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심리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1만 명까지 나올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민적 트라우마 상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보고자, 지난 3일 심리학자인 김태형 사회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 자녀도 가려던 곳...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 지난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려던 300명 정도 사람들이 압사 사고를 당하는 참사가 일어났어요. 156명이 사망해서 충격을 주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큰 충격을 받았는데, 저희 애들도 이태원에 갈 뻔했기 때문이에요. 첫째는 군대 동기 하나가 이태원 축제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가기로 거의 이야기가 되었어요. 근데 다른 한 명이 11월에 시험이 있다고 해서 연기가 됐습니다. 둘째도 친구가 가자고 그랬는데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저희 애들도 그 현장에 있었을 뻔했지요. 이걸 보면서 저는 누구라도 죽을 수 있는 참사였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고,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니까 이번 참사가 인재라는 게 분명한 것 같아요. 8년 전에 세월호를 겪고도 우리가 아직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다시 이런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구나, 참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세월호 참사 뒤 8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 변한 게 없을까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확하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필요한 시스템도 정비해야 했고, 좀 더 넓게 얘기하면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게 실패한 거죠. 그동안 민주당 정부 하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조차 명확하게 되지 않았잖아요. 아직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또다시 이런 참사가 다시 한 번 되풀이되니, 사람들은 8년 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 같습니다."


- 참사에서 진상 규명 하는 게 얼마만큼 중요한 걸까요?

"진상규명이 안 되면, 일단 애도가 안 돼요. 예를 하나 들어보면,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어떻게 죽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면 애도가 제대로 안 돼요. 애도라는 것이 단순하게 슬픈 감정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여러 가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이 올라오게 되는데 그것들을 표출하는 과정이 애도라고 할 수 있어요. 애도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소중한 대상을 상실한 아픔을 치유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진상 규명이 안 되면 감정 처리를 못 합니다. 진상이 명확하지 않으면 감정이 뭉쳐서 마음에서 빠져나가지 않아요."


- 국가에서는 지금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정쟁이 아니라 애도에 집중하자고 하는데요.

"잘못된 거죠. 애도가 언제 가능해지느냐면, 진상 규명에 더해 책임자 처벌, 나아가서 재발 방지 대책이 완전히 마련됐을 때예요. 그걸 통해서 애도가 끝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애도 기간을 정해놓고 '이때까지만 애도하고 그 다음에 진상규명하자'는 건, 전후가 뒤바뀐 거죠."

- 이태원 참사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는 세월호로 인해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겹쳐서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참사가 터지고 많은 사람이 세월호가 생각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로 인한 상처가 치유가 안 됐단 말이죠. 이게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잠복해 있게 되거든요. 그게 이번에 자극이 된 거죠. 어떻게 보면 이 참사만으로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게 아니고 세월호까지 떠올리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재발되어 합쳐지고 있는 거죠.

따라서 정작 이번 참사로부터는 별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 세월호 때 상처가 있었다면,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죠. 결론적으로 세월호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이 다시 자극되고 또 그것과는 무관한 사람들도 이번 참사만으로 상처가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굉장히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국민적 트라우마 호소, 세월호 때의 상처 치유 안 된 탓"
 
 세월호 참사 발생 2일째인 2014년 4월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는 가운데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 2일째인 2014년 4월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는 가운데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이희훈
 
영정사진 늘어나는 합동분향소 2014년 5월 1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장례진행 요원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옮기고 있는 모습.
영정사진 늘어나는 합동분향소2014년 5월 1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장례진행 요원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옮기고 있는 모습.사진공동취재단
 
- 우리나라에서 참사가 세월호만 있던 건 아닌데 왜 그럴까요?

"지금 전 국민적 심리 치료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데요. 참사가 자연재해로 인한 참사도 있을 수 있고 인재로 인한 참사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엄청난 지진이 갑자기 발생해서 많이 죽었다면 그건 불가피한 겁니다. 여기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는 일반적인 과정 거쳐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인재'인 경우 그런 식으로는 안 되거든요. 아까 얘기했듯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과 어떻게 하면 이런 죽음이 또다시 생기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지까지 다 해결되어야 겨우 치유된단 말이에요. 그것을 해야 되는데 세월호 때도 못 했고 지금도 그것을 정부가 방해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니 트라우마가 심각할 수밖에 없죠."

- 트라우마와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차이가 뭔가요?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는 정신장애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통칭하는 겁니다. 즉 포괄적인 개념이고요. 심리학자들은 마음의 상처를 트라우마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편입니다. 반면에 PTSD는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고 이후에 발생하는 장애죠. 따라서 PTSD도 트라우마라는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든 이번 참사이든 PTSD 증상은 당연히 있을 겁니다. 특히 현장에 있었던 분들은 PTSD 증상이 굉장히 심하겠죠. 그러나 이번 참사는 세월호처럼 PTSD만이 아닌 훨씬 더 다양하고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남기게 될 걸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참사 트라우마를 단순하게 PTSD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 그럼 참사 장면을 아예 안 봐야 하나요?

"반복해서 본다면 당연히 건강에 안 좋겠죠. 그러나 아예 안 보는 것도 좋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회피잖아요. 회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처가 치유될 수 없어요.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나쁜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낳을 수가 있죠.

저는 적절하게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것은 안 좋고 적절한 선에서 좀 보다가 또 조금 쉬고, 다른 데로 생각을 돌렸다가 마음이 안정되면 또 보는 식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참사가 난 지 5일째잖아요. 만약 참사로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 뭐가 있을까요?

"이건 5일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참사를 겪었을 때 제일 많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무력감이죠.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두려움도 심해질 수 있죠. 벌써 그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아침에 지하철 같은 데서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죄책감도 느끼게 되겠죠. 그 다음에 격렬한 분노도 있을 수 있고요. 또 우울감, 자살 충동 같은 것도 발생할 수 있죠."
 
 김태형 사회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김태형 사회심리연구소 '함께' 소장김태형 제공
 
- 거기에 대처할 방법이 있나요?

"이런 것들이 빠르게, 또 근본적으로 치유되려면 해야 될 일들을 반드시 해야 됩니다.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두려움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잖아요. 참사가 재발할 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재발 방지책이 만들어져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야 비로소 무력감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회적 참사, 인재 같은 경우에는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책이 중요한 거예요. 그게 없으면 치유가 안 돼요."

- 심리치료를 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나요?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심리치료에서는 이런 내용들을 거의 다루지 않을뿐더러 상담가가 그걸 다 해결해 줄 수가 없잖아요. 진상을 규명해주고 재발 방지책을 만들어서 내담자한테 확신을 주는 게 가능한가요? 거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 감정, 심리적인 이상 증세 등은 다루고 치유해줄 수가 있는데, 근본적인 치유는 개별 상담으로는 힘들 거라고 봐요."

-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대부분 20대예요.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던 세대기도 해서 정신적인 상처가 더 클 것 같은데.

"(현) 20대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인데 이번에 이런 사태를 또 겪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훨씬 더 충격이 크고 심리적 상처도 심각할 것 같거든요. 이 세대가 세월호를 겪어서 그에 대한 트라우마도 치유되지 않았죠. 그것에 더해서 이번 참사로 상처가 또 생길 것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20대는 안 그래도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세대입니다. 부정적 인식이 있는 세대인데 아마 이번 참사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에 대한 환멸이 더 심해질 것 같고, 분노도 커지겠죠. 그러면 분노는 탈출구가 없기 때문에 자기를 향해 자기를 공격하게 되어 우울증을 유발한다든가, 아니면 사회를 향해 폭발하게 되어 반사회적 행동, 예를 들어 혐오라든가 악성 댓글 등을 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지죠. 희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출생률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겠죠. 20대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이번 참사를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고 보는데요. 세월호처럼 (진상규명이) 또 흐지부지 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제대로 해결하고, 8년 전의 세월호까지 다시 꺼내어 해결해서 잘 극복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사실 유가족들이나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아이들의 죽음이 허무하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이런 죽음이 다시는 없게 해달라는 건데, 그러려면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거나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죠. 또한 당연히 죽음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처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아가 세월호나 이태원 같은 참사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되겠죠.

세월호가 터졌을 때 국민들이 외쳤던 것은 '나라다운 나라'죠. 그런데 그 열망이 민주당 정권하에서도 실현 안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잃은 것이죠. 이번에 또 참사가 터진 거니까. 이번에는 단순하게 이 참사를 해결하는 데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사회를 바꿔서 정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우리가 나아갈 때 이 참사가 극복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야 트라우마도 치유될 수 있고요."

-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경험도 있잖아요. 저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다 망가지게 되거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라다운 나라를 건설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집니다. 정신적으로 붕괴돼 더는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말고 정말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과 싸움을 모두가 해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소리'에도 중복게재 합니다.
#김태형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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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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