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민주묘지의 단풍.늦가을까지도 단풍이 물들어간다.
이상헌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전국의 학생들과 시민이 궐기하였으니 역사에 기록된 4·19혁명이다. 당시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로 186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고 부상자는 6026명이나 되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하와이로 도피하여 요양원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
이승만의 종진집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한 이기붕은 혁명 이후 전 가족이 자살한다. 12년간 이어진 자유당의 독재 체제가 무너졌지만, 1년 하고도 한 달 뒤에 5.16 군사 정변으로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17년간 엄습한다.
폭정을 일삼다 쫓겨난 혼군
▲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의 단풍길 #36 ⓒ 이상헌
4.19민주묘지를 나와 쌍문공원으로 가보자. 효문고교 사잇길로 들어서 잠시 걸으면 최근에 시민에게 개방된 꽃동네책쉼터가 나온다. 수유실을 비롯하여 카페 형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쌍문역 방향으로 가면 함석헌기념관을 둘러볼 수도 있다.
북쪽으로 진행하여 나즈막한 둘레길 자락을 돌아내려오면 연산군묘에 다다른다. 9대 임금인 성종의 맏아들이자 10대 왕이었던 연산군은 폭정으로 군주의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연산군의 어머니는 성종의 첫번째 후궁으로 왕비에 오른 윤기견의 딸인 윤씨다.
중전의 자리에 오른 윤씨였지만 성종의 마음은 다른 후궁에게 가 있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질투에 눈이 먼 그녀는 후궁들을 제거하려고 엽기적인 일을 벌이다가 발각되어 성종의 분노를 산다.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임금의 얼굴에 손톱자국까지 내게 되므로 시어머니였던 인수대비가 노발대발하여 그녀를 폐서인 하라고 청한다. 중전에게서 마음이 떠난 성종이 이를 수용하고 윤씨는 궁궐에서 쫓겨난 뒤 사약을 받고 죽는다. 성종은 이에 관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말도록 조치를 하였고 훗날 왕위에 오른 연산군이 사건에 대한 전말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