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 중인 이선영씨는 요즘 재활운동을 받고 있다. 재활운동을 위해 가족에게 부탁해 받은 양말을 신고 찍은 사진.
이선영씨 제공
여기까지가 참사 당시에 대한 저의 기억이고, 11월 5일의 글입니다. 현재 저는 1시간가량 압착되어 깔려 있던 후유증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온몸이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누운 채로 얕은 숨만 쉬다가, 어느 날은 숨을 조금 더 길게 쉴 수 있게 되고, 어느 날은 오른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고, 또 어느 날 아침엔 꼼짝 않던 왼 다리가 갑자기 굽혀지고, 어느 날은 드디어 몸을 옆으로 뉘일 수 있게 되고, 또 어느 날은 두 팔로 지지해서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다가, 지난 12일엔 한 팔로만 매달리고도 몇 초나마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이 다릅니다. 지금은 발목 아래로 전혀 움직이지 않지만, 모르죠 또 어느 순간 갑자기 짜잔-하고 움직일지.
병원에서의 일상은 조금 정신이 없습니다. 새벽부터 비몽사몽인 채로 여러 검사를 하고 나면 아침 7시 30분부터 밥을 먹어야 합니다. 오전 회진을 도시는 의사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양말을 챙겨 신고 허겁지겁 물리치료를 받으러 갑니다. 물리치료가 끝나면 운동재활을 하고 다시 병실로 올라와 마저 씻고 아침에 어질러 놓은 침대와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점심시간인 식입니다. 그러고 또 오후에 운동재활을 가지요.
저는 운동과 춤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매일 걷고, 자전거를 타고, 필라테스를 하고, 홈트레이닝을 하고 춤을 췄습니다. 인바디를 찍으면 하체 근육만 평균 이상 나와서 '상하체 불균형'이 띡,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운동했는데 사고 직후엔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근전도 검사를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운동했던 중둔근이 꼼짝도 않더라고요. 갈라져있던 앞벅지를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제 신발장 안의 여러 종류의 댄스화와 하이힐과 스케이트 보드, 롱보드 그리고 롤러 등을 위해서라도 재활을 열심히 해야합니다.
재활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몇 개월 혹은 그 이상을 더 해야 합니다. 재활이 끝나고서도 까치발을 못 들거나 무게를 못 버티는 등의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일상으로는 돌아올 수 있다는데, 제게 일상은 운동과 춤이었기에 그다지 달가운 말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올겨울에도 피겨와 발레를 배우려했는데 말이에요. 까치발을 못 들면 춤을 어떻게 추지 하는 생각에 조금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내년에 춤을 출 거라 결정했어요. 뭐든 제가 하기 나름이니까요.
최근엔 정신과 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클럽에 일찍 구조되었던 제 친구들이 일상 생활에서 조금 힘들어 하더라고요. 평소엔 저보다 무던한 친구들인데 말예요. 그래서 자기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며, 저보고도 지금은 괜찮아보여도 병원 밖으로 나오면 어떨지 모른다고… 그래서 혹시 모를 트라우마의 씨앗이 있다면 다 뽑고 퇴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트라우마의 싹을 지금 찾아낼 필요는 없다더군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헤집을 이유는 없다구요. 지금 괜찮은데 굳이 상담까지 받다가 오히려 안 좋을 수 있다면서요. 만약에 나중에 언젠가 안 좋아지면, 그때 가서 상담받아도 괜찮다고. 그래서 지금은 그냥 마음 편히 평소처럼 일상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자신을 지켜내야 애도도 슬픔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들도 할 수 있는 거라고. 본인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슬퍼하되 슬픔에 잠식되지 말고, 분노하되 이성을 잃지 말고, 맑은 정신이어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따질 수 있고 그에 미안해하며 추모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래서 우리는 일상을 지켜내야만 해요. 그것이 본인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이 말이 어떤 분들한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겐 정말 그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고 싶은 만큼 다 느끼는 것도 또다른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것도 괜찮아요, 하지만 언젠간 꼭 일상을 온전히 느끼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그러니, 무너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