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 대전현충원의 유일한 '꽃 대궐', 백선엽 묘소. 워낙 화려하게 치장되어 멀리서도 눈에 띈다.
서부원
대전현충원과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산내 골령골 학살터 역시 컹컹 개 짖는 소리와 길게 늘어뜨린 만장의 펄럭이는 소리만 들릴 뿐 찾는 사람의 발길은 없었다. 쾌청한 하늘의 한낮이었는데도 스산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아이들도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친다며 움찔거렸다.
최대 8천 명이 이곳에서 학살됐고, 진상규명은커녕 아직 수습되지 않은 유해가 부지기수라는 소개 글에 아이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을 버리고 이곳으로 피신한 직후 벌어진 학살이라는 점에 더욱 놀라워했다. 왜 이러한 내용이 역사 교과서에 일언반구조차 없는지 반문하기도 했다.
학살터를 돌아 나오는 길 바로 곁 산내초등학교를 지나며, 차 안에서 아이들끼리 토론이 붙었다. 과연 저 초등학생들도 이곳에서 엄청난 집단 학살이 자행됐다는 사실을 아는지 궁금하다는 한 아이의 질문으로부터 비롯됐다. 아직 어려서 알면 해롭다는 주장과 진실을 아는 게 나이와 무슨 상관이냐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부딪혔다.
토론의 승패는 나지 않았다. 승패 대신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이 사건에 대해 생소해할 거라는 푸념을 쏟아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 이번 답사의 모티프를 제공한 지현이조차 기성세대 중 6.25 전쟁 중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아는 분들이 열에 한두 명도 안 될 거라고 장담하듯 말했다.
대전에서 대구로 향하는 길은 전쟁 초기 이승만의 피난길이기도 하다. 그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속절없이 패퇴하는 국군을 질타하며 대구를 지나 부산까지 도망쳤다. 그가 퇴각할 때마다 곳곳에서 집단 학살이 자행됐고, 이유인즉슨 하나같이 이적행위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갱도 입구, 잠긴 철문 앞에서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터에 도착했다. 역시 인적은 없었고,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겨울바람만 스산한 소리를 냈다. 이곳에 끌려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뒤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이들이 내는 울부짖음 같아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곳에서도 최대 7천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열 명, 백 명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천 명, 만 명이 죽으면 그저 통계일 뿐이라더니, 아이들은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시나브로 둔감해졌다. 아이들은 학살이 지하 갱도에서 벌어진 탓에 대전 산내 골령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갱도 입구에 자물쇠 채워진 철문만이 이곳이 학살터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갱도 안에는 수천 구의 시신이 수습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당시의 참혹한 순간을 떠올리며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아이들과 함께 철문 앞에 서 '진혼곡' 삼아 '그날이 오면'을 합창했다. 갱도 안 깊숙한 곳까지 전해지도록 큰 소리로 혼을 담아 불렀다.
▲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의 '진혼곡' ⓒ 서부원
'그날이 오면'을 택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영화 <1987>의 OST로서, 아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노래라는 점도 있지만,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공유하자는 취지였다. 6월 민주항쟁은 제주 4.3 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6.25 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에 이르기까지, 불의한 정권에 입막음 당하고 짓밟혀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봇물 터져 나온 계기였다.
알다시피, 6월 민주항쟁 직후 5공 청문회가 열렸고, 공중파 방송사에서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등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시민들의 정의감에 불을 지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했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설립까지 이어졌다. 한없이 더디긴 했어도 의미 있는 역사의 진일보였다.
'그날이 오면'을 목놓아 부르면서 아이들도 깨달은 바가 있다고 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은 문화재를 감상할 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전국 각지에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는 사실을 배웠고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이 땅에서 더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굳은 다짐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 아이는 아직도 쉬쉬하고 있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역사를 조금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제 알았으니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고 당차게 말했다. 답사를 떠나기 전 경산 코발트 광산 희생자 유족회의 연락처를 내게 건네면서, 유족분을 만나면 더 유익한 역사 공부가 될 것 같다고 했던 아이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1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민간인 학살터에서 아이들이 부른 '그날이 오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