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주포면에는 토정 이지함의 묘가 있다.
이재환
요즘은 타로점이 더 유명하지만 예전에는 연초에 한해의 운을 점치기 위해 토정비결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논란이 있지만 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1517~1578)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지었다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토정비결을 이지함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는 이유는 그가 백성을 대한 태도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토정은 56세인 1573년 포천 현감으로 늦은 나이에 관직에 올랐다. 토정은 포천 현감 시절 임진강의 범람을 예측해 수많은 백성을 구했다. 뒤이어 아산 현감 시절에도 걸인청을 만들어 빈민을 구제했다. 백성을 생각했던 그의 마음은 목민관 이전부터 목민관이 된 그 순간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토정비결은 이지함의 삶과 닮았다. 실제로 토정비결에는 '나쁜 말'이 없다. 팍팍한 삶을 살았던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토정비결을 통해 운세를 점치는 것이 어쩌면 큰 위안이 되었을 수도 있어 보인다.
토정비결의 내용은 '뜻밖의 성공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거나,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귀인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식의 운세 풀이로 가득하다. 물론 7~8월에 물가를 조심하라거나, 불을 조심해야 한다는 등의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음력 새해 첫날인 지난 22일 토정이 묻혀 있는 충남 보령시를 찾았다. 새해 운세를 점치는 토정비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토정의 묘를 보기 위해서다.
목은 이색의 6대손인 토정 이지함은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무덤과 가족묘는 장산리에서 자동차로 대략 30여분 정도 소요되는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산27-3번지에 있다. 토정의 가족묘 앞에는 토정을 소개한 글이 적혀 있었다. 글에는 '조선 중기 학자이며 기인으로 이름난 명현 이지함 선생의 묘'라고 소개되어 있다.
토정은 출생지인 보령과 서울 마포를 근거지로 삼아 전국을 유랑한 기인이었다. 그의 기행도 기행이지만 목민관으로서의 삶에 더 끌린다. 요즘 말과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정치인이 어디 한둘인가. 설날 토정비결을 보는 대신 그의 묘를 찾은 이유도 그와 같은 정치인이 그리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