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옥천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모습
월간 옥이네
교육 불평등은 사회 활동을 할 권리, 즐겁게 여가를 보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일할 권리마저도 앗아간다. 장애인의 저학력은 고용불안과 빈곤으로 이어지고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손실이라는 점에서도 결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착취나 성범죄 등 각종 장애인 대상 범죄 역시 이런 교육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 장애인의 교육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이기에 학령기 교육을 놓친 장애인의 평생교육은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평생교육 참여 경험은 매우 부족하다. 2020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교육 참여 경험이 없다는 응답 비율이 무려 99.1%에 달한다. 장애인 100명 중 평생교육 참여 경험이 있는 이는 1명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이는 평생교육기관의 교육 과정 자체가 비장애인 위주로 운영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 내용과 운영 방식 등 교육 과정 전반을 장애인 맞춤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미 사회 활동과 교육 경험 측면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격차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잖아요.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배우고 수행한다는 게 장애인에게는 무척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느려서 다른 수강생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나 때문에 진도를 빨리 나가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고요.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이 용기를 내서 나올 기반도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평생교육으로 장애인이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별도의 장애인평생교육기관이 필요하고, 기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애인 맞춤형 프로그램이 개설돼야 할 이유예요."
해뜨는 학교는 문해교육을 비롯해 도예·요리·향초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 시간대에 2개의 프로그램을 번갈아 열고,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밤 시간대에 1개의 프로그램을 추가로 운영한다.
초창기엔 이런 활동이 센터 활동가들의 십시일반과 이웃들의 후원으로 근근이 이어졌지만 현재는 공적 지원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성을 갖추게 됐다. 2015년 한국장애인재단의 평생교육 사업을 시작으로 2016년부터는 충청북도교육청과 옥천군의 장애인 교육 사업비(2022년 기준 옥천군 2700만 원, 충북교육청 5500만원)를 지원받고 있는 것이다.
당장 월세를 낼 형편도 되지 않아 이웃의 선의에 기대 무상으로 교육공간을 써야 했던 때에 비하면 나아진 상황. 하지만 프로그램 운영비와 강사비를 비롯해 공간 임대료와 각종 공과금 등을 따져보면 이 역시 아직 충분한 상황은 아니다.
장애인 평생교육의 열악함은 해뜨는 학교가 도내에서는 세 번째, 옥천에서는 유일한 장애인 평생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옥천 지역 5157명(2020년 등록 장애인 기준)의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전문 기관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최명호씨는 옥천군이 보다 적극적으로 장애인 평생교육 문제를 들여다보길 주문한다.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권을 중시해주길 바란다고. 20여 명의 장애인 학생이 참여하는 해뜨는 학교 역시 프로그램 사전 수요조사가 한 달여 걸릴 때가 있을 정도로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는 다양하다.
그러니 5천 명이 넘는 장애인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그 몇 배가 돼야할 게 당연할 터. 2021년부터 장애인 평생학습 도시 선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옥천군으로선 이런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장애유형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같은 문해교육이라도 청각장애인 대상이냐 발달장애인 대상이냐에 따라 달라져야 해요. 또 장애인들 중에도 음악이나 미술 등 다양한 예체능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많아요. 피아노나 오카리나 수업 같은 걸 원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배울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지요.
옥천군은 '두드림 지원 서비스(찾아가는 평생교육 서비스)'로 장애인 단체나 저희 기관에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이건 해당 단체와 기관 상황에 맞춰 진행하다 보니 그 한계도 분명해요. 아무래도 장애 당사자의 다양한 욕구보다는 당장 단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에 만족해야 하니까요."
"저 없이도 돌아갈 수 있는 운영 구조 만들고 싶어요"

▲ 충북 옥천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교과서
월간 옥이네
그나마 다행은 옥천군의 경우 '장애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는 것. 물론 이 역시 아무런 실천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장애인 평생학습 협의회를 별도 구성해 다양한 장애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고, 프로그램에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하는 등 수요자 중심의 평생교육 기반 조성을 위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더불어 면 지역 장애인을 위한 교육 시설 역시 지역 행정이 풀어야 할 숙제.
"해뜨는 학교는 읍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읍 가까이 계시는 분들이 많이 오시죠. 구읍이나 읍 외곽, 동이면에서도 오시고 멀게는 청산·청성면 쪽에서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멀리서 오시는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밖에 못 오니 많이 아쉬워하시죠.
휠체어 장애인의 경우엔, 특히 저녁 시간대엔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오히려 제가 '안 오시는 게 낫지 않겠냐'고 권유할 때도 있어요. 서글프죠, 장애인 교육을 위해 해뜨는 학교를 열었는데 오지 마시라고 얘기해야 하니..."
그런 서글픔을 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최명호씨는 버스 운전면허도 취득했다. 어쩌면,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작은 버스라도 구할 수 있을 때 곧바로 운전대를 잡기 위해서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지만 이동할 수 없어 방 안에만 있어야 하는 장애인들과 함께 야학으로 향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버스도 오토(자동변속기)가 나와 한쪽 팔이 불편한 저도 수월하게 면허를 딸 수 있었다"며 빙그레 웃는 그는 새해 또 다른 꿈을 꾼다. 하나 뿐인 교실을 2~3개로 늘리고 상근 인력도 최소 1명을 확보해 운영의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공간을 옮겨볼까 싶어요. 지금은 교실이 하나뿐이라 현재 인원도 소화하기 어렵거든요. 교실이 늘어나면 학생들도 매일 나올 수 있겠죠. 원할 때 나와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거고요. 야학을 함께 운영할 상근자도 1명 충원하고 싶어요. 이건 옥천군에 적극적으로 요구하려고요. 공간과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그램이 탄탄하게 운영될 예산도 마련해야죠.
어느 장애 당사자 부모님께서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해뜨는 학교가 계속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제가 그만두면 지속될 상황이 아니거든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운영 구조 자체를 공공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누가 야학 교장으로 오든 해뜨는 학교가 계속 될 수 있도록요. 새해는 그런 큰 그림을 그려가는 첫 단계로 만들고 싶습니다."
처음 해뜨는 학교는 한글을 배우고 싶은 단 한 명의 장애인에게서 시작됐다. 그를 외면하지 않은 또 다른 장애인 활동가들의 노력과 함께 말이다.
새해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힘을 보태야 할 곳은 멀리 있지 않다. 단 한 명의 장애인을 위해 마음을 모았던 이들처럼, 그래서 행정과 정치가 외면한 교육권을 지역 장애인들에게 작게나마 선물한 것처럼.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가 외칠 꿈, 거기서 시작될 아름다운 변화를 이제는 우리도 함께 그려가야 하지 않을까.
월간 옥이네 통권 67호 (2023년 1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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