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산행을 다니며 외로움을 승화시켜 시를 짓는 김일형 시인
최미향
- 푸시킨의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를 유난히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린 소년의 외로움 깊이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였지요. 1년 동안 눈물로 밤을 새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쌍둥이 동생이 아버지께 "저는 학교 가지 않고 집에서 농사지을 거니 둘째 형만이라도 학교에 가도록 해주세요"라고 했을까요.
드디어 이듬해 대산중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등교했지만, 친구들은 이미 선배가 되어버렸더라고요.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일 년의 공백은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고 평소 적었던 말수는 더 적어져 버렸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 학교는 학생들의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 종목 한 가지씩을 선정해서 전교생이 점심시간에 모여 운동을 했는데 대산중학교의 교기(校技)는 태권도였습니다. 전교생이 태권도로 체력을 단련시키고 있었습니다. 빈혈이 심했던 저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그것이 눈에 띄었는지 체육 선생님은 저를 태권도부원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저는 본래 누구를 때리고 맞는 운동은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어렵게 학교에 들어온 상황이라 더더욱 그랬습니다. 운동선수 생활을 거부했습니다. 엉덩이가 터지기 직전까지 맞기도 했습니다. 3학년 때는 제 의사와 관계없이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전교 부회장이 되었지만 과묵한 성격은 여전히 했고, 외로움 또한 좀처럼 사위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만난 시집이 지금도 책장의 가장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명시 푸시킨의 시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외우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