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을 아무리 잘해도 싱싱하지 않으면 맛있다고 할 수 없다.
픽사베이
언젠가 '제목을 잘 뽑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럴 때 내가 말했다. "원고가 좋으면 제목도 잘 나온다"고.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다. 과일 포장을 아무리 잘한다 한들, 과일이 싱싱하지 않으면 맛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제목도 그렇다.
간혹 글보다 제목이 튀는, 다소 '오버'해 제목을 뽑는 경우를 보게 될 때가 있는데, 최종적으로는 수위를 조절한다. 잘 지은 제목은 시너지를 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글의 분위기를 해친다. 이런 태도는 글쓴이에게 민폐를 주는 행위이기도 하고(제목이 이상하면 글 쓴 사람이 욕을 먹는다, 또한 잘 못 뽑은 제목에 항의하는 경우는 많아도 잘 지은 제목으로 칭찬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요한 건 튀는 제목이 아니라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글이다. 좋은 제목에 부합하는 완성도 있는 글을 쓰려면 글을 쓰는 사람이 쓰려는 걸 맞게 쓰고 있는 건지, 그렇지 않다면 뭐가 부족한 것인지, 어떻게 보강하면 되는지 하나씩 다시 점검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명쾌한 답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글을 쓰는 일을 두고 '나에 대해 잘 알게 된다'고 하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혼자 묻고 답하는 일이 많아서. 많이 질문할수록 좋은 글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내가 직접 글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을 하면서 뽑는 제목은 대부분 검토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진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오랜만의 산행', '봄의 길목에서' 등 글쓴이가 직접 지어서 보낸 제목이 다소 밋밋하고, 궁금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어떤 글의 내용인지 뻔하게 유추가 되는 제목이라면 고친다. 독자가 끌릴 만한 문장으로.
편집기자가 글쓴이의 제목을 손보는 가장 큰 이유는, 글쓴이가 정성을 다해 취재하고 공들여 쓴 좋은 글을 더 많은 독자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내가 편집한 기사가 영향력 있는 글이 되고,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을 때 일하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하지만 감동도, 공감도, 정보도, 새로움도 없는 글을 제목만으로 어필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목을 먼저 쓰는 게 나을지 나중에 쓰는 게 좋을지에 대해 꼭 답을 해야 한다면, 그건 글 쓰는 사람이 '선택'할 문제라고 하겠다. 본인이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취하면 된다. 제목 한 문장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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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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