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몬해협 바닷가에 설치된 조슈포대 뒤에 보이는 다리가 간몬(關門)대교다.
문진수
이 전쟁은 서양 열강과 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일본은 열강이 보유한 강력한 군사력을 보았고, 이들과 맞서려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천황을 받들고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은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먼저 무기력한 막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존왕도막(尊王倒幕) 운동으로 전환된다. 구체제 전복의 봉화가 오른 것이다.
그리고 10년 뒤, 일본은 자신들이 열강에 당했던 방식 그대로 군함을 몰고 조선 땅을 침범한다. 한반도 침략의 서막인 운요호 사건(1875년)이다. 조선 군대와의 교전을 도발하기 위해 강화도에 정박한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가 조슈번이 만든 배다. 조선의 빈약한 군사력을 눈으로 확인한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개항을 강요한다. 부산 외 두 곳(원산, 인천)의 항구를 개방하고,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무관세 무역과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락한다는 내용의 강화도 조약(1876년)이 체결된다.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이 대포를 앞세워 개항을 압박하고 체결한 조약(미일수호통상조약, 1858년)의 복사판이다. 무력을 동원한 강제 개항과 불평등조약 체결이라는 제국주의의 문법을 똑같이 적용한 것이다. 조선의 빗장이 무기력하게 열리면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채 20년도 되지 않은, 이 짧은 시기 동안 일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바로 메이지 유신이다. 세상을 향한 문을 걸어 잠근 채 안에서 썩어가던 조선 왕조와 달리, 일본은 유신(維新)을 통해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함으로써 근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시대 전환의 갈림길에서, 구체제의 반발과 저항을 극복하고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빠른 산업화 과정을 통해 근대국가를 수립한 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메이지 시대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속내는 복잡하다. 우리보다 나은 게 없어 보이는 섬나라 사람들이 이루어낸 업적을 애써 평가절하하기도 하고 동시대를 살았던 조상들의 무능함에 질색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본이 제국주의 이념에 빠져 한반도를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을 억압, 수탈했으면서도 반성은커녕 역사 왜곡을 자행하는 모습은 한국인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시모노세키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의 정치적 고향이다. 부친인 아베 신타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의회에 진출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세습이 이루어진 정치 가문 출신이다. 일본인들은 정치를 가업(family job)으로 생각한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당을 아들이 이어받는 것처럼, 정치인의 자식이 대를 이어 정치라는 업(業)에 종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생전에 아베는 자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기시는 1936년부터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에서 산업 행정을 수행한 바 있고, 태평양 전쟁 때는 상공 대신으로 전시물자 동원을 지휘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일제 패망 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실형을 살았지만, 1957년에 총리대신(수상)으로 부활한 인물이다. '쇼와(昭和)의 요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는 1958년 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된 이래 내리 11선을 한 거물 정치인이다. 세 아들 중 둘째인 아베 신조에게 가업을 물려주기로 하고 어릴 적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정치를 몸에 익히도록 했다고 한다. 그의 정치적 신념 이면에 극우 사상이 자리하고 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정한론의 원조 요시다 쇼인과 메이지 유신을 이끈 죠슈번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일본에는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거 투표율도 우리와 비교해 현저히 낮다. 일본인들은 정해진 교본(敎本)과 질서를 중시하고 위에서 내린 결정은 따라야 한다는 의식을 가졌다. 지배권력을 상대로 한국의 촛불 항쟁 같은 싸움을 만들지 못한다. 이런 토양은 보수우익들이 대를 이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일본의 정치 지형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는 이유다.
역사에 비약은 없다는 말이 있다. 지나온 역사가 오늘을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내일로 이어진다. 한국과 일본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누군가의 말처럼,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먼저 손을 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한국과 발전적인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려고 할 때, 두 나라의 역사는 비로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좁은 해협 사이로 컨테이너 상자를 가득 실은 배들이 쉼 없이 오간다. 항구를 떠난 배가 세토(瀬戸) 내해로 가면 일본 본토고 동해로 빠지면 한반도다. 두 바다가 이곳에서 만난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는 자매도시다. 코로나로 닫혔던 뱃길이 열리면서 국제여객선이 매일 두 도시를 오간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얽혀있다. 시모노세키는 조선인의 애환과 향수가 깃든, 슬픈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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